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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나우] 체중 감량의 경제학

투자자들이 새로운 체중 감량법을 주목하고 있다. 원래 당뇨병 치료제인 GLP-1이 비만 치료제로 전용되고 있다. 비만율이 40%로 치닫는 한국을 포함해 체중 조절용 약물 시장의 잠재력은 매우 크다. 비만이 아닌 사람들까지 더 날씬하게 보이려고 비만 치료제를 복용한다. 또 GLP-1 계열 약물은 치료 중단이 부를 요요현상 때문에 지속해서 복용해야 한다.   비만 치료제는 경제적으로 세 가지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소비 패턴의 변화, 노동시장의 변화 그리고 사회 분열의 증가다. 다이어트 치료제에 돈을 더 쓰려면 저축을 줄이거나 다른 품목의 지출을 줄여야 한다. 치료제 구매는 결국 다른 곳에 쓰던 돈의 일부가 제약회사로 흘러간다는 의미다. 약값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식비보다 비싸다. 즉 외식을 덜 한다고 해서 약품 구매비가 충당되는 것은 아니다. 비만 치료제는 또 다른 방법으로 소비 패턴을 변화시킬 수 있다. 체중 감량으로 사회적 자신감을 얻은 사람들은 의복이나 엔터테인먼트에 더 많이 지출할 수 있다. 이 역시 다른 부분에 나가던 기존 지출을 줄인다.   다이어트 치료는 세 가지 방식으로 노동 시장을 변화시킬 수 있다. 첫째, 비만으로 인한 편견을 완화할 수 있다. 비만인 사람, 특히 비만 여성은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다. 사회적 편견 때문에 실제 능력을 과소평가 받는다. 편견으로 인해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할 수 없다면 생산성도 그만큼 떨어진다. 비만을 개선하면 이러한 편견으로 인한 영향이 줄 수 있겠지만, 계속 비만 상태인 사람들은 더 큰 피해를 볼지도 모른다. 둘째, 비만이 개선되면 비만 관련 질병도 감소하기 때문에 근로자의 결근 횟수가 줄어든다. 이는 경제적으로 노동 공급이 증가한다는 뜻이다. 셋째, 비만이었던 근로자의 체중이 줄면 생산성이 높아진다. 결근 횟수가 줄면 기술을 쌓을 기회가 늘어나고, 전반적인 건강 상태가 좋아지면 업무 효율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치료의 가장 부정적인 위험은 사회적 긴장을 부추기는 것이다. 소셜미디어때문에 과체중인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더욱 강화될 위험이 있다. 고소득 소비자는 부담 없이 비만 치료제를 즐겨 복용하며 외모를 가꿀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은 비만과 저소득층을 자동으로 연관 짓는 편견에 더욱 시달릴 것이다. 저소득층은 고가의 비만 치료제를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분개할지 모른다.   GLP-1과 같은 비만 치료제는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이 약물이 초래하는 변화는 경제의 여러 부문과 사회 집단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폴 도너번 /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마켓 나우 경제학 체중 비만 치료제 체중 감량법 다이어트 치료제

2024-04-24

[디지털 세상 읽기] AI 전투기 조종사가 온다

미국의 방위고등연구국(DARPA)은 최근 AI가 조종하도록 개조된 F-16 전투기가 인간 조종사가 모는 전투기와 모의 공중전을 벌이는 테스트를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 항공기가 아닌 시뮬레이션을 통한 가상 대결에서는 AI가 인간 조종사를 이긴다는 결과가 이미 2020년에 나왔다. 이번 테스트는 물리적인 비행에서도 같은 결과를 재현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였고, 개조한 AI 전투기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인간 조종사 두 명이 탑승해있었지만, 실제 조종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인간과 AI 조종사 중 어느 쪽이 공중전에서 승리했는지는 발표하지 않았지만, 테스트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면 다음 단계는 아예 인간을 태우지 않는 AI 전용 전투기의 개발이고, 이는 이미 진행 중이다. 전투기를 인간이 조종할 경우 엄청난 중력 가속도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AI 조종사는 그런 제한 없이 전투기의 성능을 마음껏 사용하게 해준다.   게다가 군의 관점에서는 전투기 조종사가 부담스러운 이유가 더 있다. 일단 조종사를 양성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고, 만약 이들이 실제 전투에서 격추될 경우 구출하는 작전에도 큰 비용과 희생이 따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군은 앞으로 인간 조종사가 전투에 직접 참가하는 대신, 이들에게 여러 대의 드론 전투기를 지휘하는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전투기 조종사 대의 전투기 ai 전투기 인간 조종사

2024-04-24

[음식과 약] 미세플라스틱을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

우리는 플라스틱 세상에 살고 있다. 플라스틱은 분해되지 않는다. 작은 조각들로 쪼개질 뿐이다. 과학자들은 그렇게 쪼개진 플라스틱 입자를 사람의 폐, 간, 태반, 모유, 혈액에서 발견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람의 몸속에 들어온 미세플라스틱은 건강에 얼마나 해로운가? 이들이 심장에 해로울 수 있음을 암시하는 이탈리아 연구 결과가 2024년 3월 7일 저명한 학술지(NEJM)에 발표됐다.   뇌로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에 콜레스테롤과 지방이 쌓이면 혈관이 좁아진다. 이로 인해 혈액 흐름에 문제가 생기면 수술로 침전물 덩어리(플라크)를 제거해야 한다. 연구팀은 이렇게 제거한 덩어리에서 미세플라스틱, 그보다 더 작은 나노플라스틱이 발견된 환자들과 그렇지 않은 환자들을 비교했다. 수술 뒤 34개월 동안 뇌졸중, 심근경색, 사망위험에서 미세플라스틱 유무에 따라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지 지켜봤다. 그 결과 미세플라스틱이 혈관 플라크에서 발견된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뇌졸중, 심근경색, 사망 위험이 무려 4.5배로 높게 나타났다. 미세플라스틱이 혈관 안쪽에 쌓이면 염증을 유발하여 뇌졸중과 심근경색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추측이다.   미세플라스틱이 해로울 거라는 우려가 크지만, 아직 인간을 대상으로 질환 위험과 미세플라스틱 사이의 관계를 조명한 연구는 많지 않다. 2022년 중국 연구에서 건강한 사람보다 염증성 장 질환 환자의 대변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더 많이 발견되었지만 이는 단순히 상관관계만을 보여줬다. 이번 연구도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 위험이 4.5배에 이를 정도로 커다란 차이가 3년 이내에 나타났으니 인과성이 있을 거 같긴 하다. 하지만 다른 변수가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플라스틱이 발견된 환자들이 심장 질환, 당뇨병, 고지혈증도 더 많았고 남성이며 흡연자인 경우가 많았다. 비교 대상이 총 257명으로 소규모 연구라는 한계도 있다. 연구자들도 후속연구가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어떻게 하면 미세플라스틱을 적게 먹을 것인가. 덩치가 큰 육식성 어종, 바닷물을 여과해서 먹이를 먹는 패류를 적게 먹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물 마실 때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 양이 제일 많다. 마시고 버린 생수병이 강과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언젠가는 쪼개져 다시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유럽환경청에 따르면 세계에서 지금껏 생산한 플라스틱의 절반은 2000년 이후 만들어진 것이다. 생산된 플라스틱의 고작 9%가 재활용된다. 한번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이 40%에 달한다. 지구상의 누구도 플라스틱을 삼키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이유이다. 미세플라스틱과 건강에 대한 연구는 과학자들에게 맡기더라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는 모두가 함께해야 한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미세플라스틱 미세플라스틱 유무 미세플라스틱 사이 결과 미세플라스틱

2024-04-24

[문장으로 읽는 책]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바쵸프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고,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그는 전차에 대해서, 빵가게에 대해서, 넵스키 대로에 내리는 소나기에 대해서, 여자들의 구두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무엇이든지, 정말로 뭐든지 다 이야기로 만들 수 있었어요.” 아무리 소소한 소재라도 이바쵸프의 입을 거치면 듣는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재미있고 매혹적인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전차에 무임승차하려는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 빵 속에서 발견된 외화 때문에 체포됐지만 같은 빵 속에서 발견한 다이아몬드를 뇌물로 주고 풀려난 사람의 이야기, 넵스키 대로에 소나기가 내릴 때 갑자기 비를 맞고 홀딱 젖은 채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들, 새로 구두를 사서 뽐내며 신고 다니다가 전차 안에서 건설 노동자의 흙투성이 발에 밟혀 울상이 된 멋쟁이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     정보라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저주토끼』로 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의 초기 단편 모음집이다. 인용문은 러시아 배경의 ‘Nessun sapra(네순 사프라)’. 종전 후 숙청당해 정신병원에서 죽어간 전설적 소설가 이바쵸프와 그가 죽자 시체를 잘라 먹으며 사랑을 지켰다는 간호사 류보프의 얘기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상적인 생활, 내 어린 날의 생활이 문만 열고 나가면 바로 바깥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어요.” 이바쵸프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류보프의 회고인데, 한편으론 왜 사람들이 이야기의 마법을 필요로 하는지도 말해 준다.   나무가 돼버린 친구를 위해 복수하는 ‘나무’ 등 기이하고 비현실적 세계에 냉엄한 현실과 잔혹한 복수를 뒤섞는 정보라 환상문학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전설적 소설가 멋쟁이 아가씨 비현실적 세계

2024-04-24

[사설] 끊이지 않는 투자사기 논란

한인 사회에서 가상자산(암호화폐) 투자 사기 논란이 또 불거졌다. ‘VMS USA’라는 한인 가상자산 업체에 투자했다는 일부 투자자는 폰지 사기 피해를 주장하며 수사 기관에 고발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들에 따르면 업체 측은 비트코인 채굴 특허시스템을 홍보하며 투자를 유치했으며, 자체 코인까지 만들어 판매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코인은 현재 가격 폭락은 물론 거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 업체에 투자한 한인은 200여 명에 달하며, 투자금 총액은 수백만 달러에 달할 것이라 게 이들의 추산이다. 투자자 가운데는 시니어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VMS USA 대표는 “우리는 한국과 미국에 특허 등록을 완료하고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회사”라며 “투자자에게 투자한 원금을 돌려주는 주식회사는 없다”고 밝혔다. 그의 이 말은 투자로 인한 결과는 전적으로 투자자 책임이라는 주장으로 들린다.     폰지 투자 사기 논란은 한인 사회에서 자주 발생하는 문제다. 이른바 ‘돌려막기식’ 구조가 대표적 수법이다. 사기꾼들은 고율의 이자나 수익률을 미끼로 투자자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초기에는 약속한 수익금을 지급하며 신뢰를 쌓은 후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를 늘려간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투자자의 돈으로 앞선 투자자에게 이자나 수익금을 지급하는 것에 불과하다. 신규 투자자 확보에 차질이 생기면 전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알면서도 당하는 것이 폰지 투자 사기다. 고율의 이자나 높은 수익률로 유혹하다 보니 뿌리치기가 어렵다. 더구나 주변 사람이 단기간 투자로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것을 보면 쉽게 넘어간다. 투자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상식 수준을 벗어나는 고율의 이자나 수익률을 보장한다고 접근하면 일단 사기를 의심해야 한다.사설 투자사기 논란 투자사기 논란 신규 투자자 투자자 가운데

2024-04-24

[사설] ‘실시간 범죄 센터’ 확대 해야

귀갓길 여성이 지하철에서 노숙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지고, 한인타운 쇼핑몰에선 새벽 근무를 하던 한인 경비원이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었다. 그런가 하면 LA시장 관저 유리창을 깨고 침입하려던 괴한이 체포되기도 했다. 모두 이번 주에 발생한 강력 사건들이다.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까닭에 주민들의 충격은 크다.     LA지역의 심각한 치안 불안 상황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개선 요구도 끊임없이 있었다. 경찰은 그때마다 대책을 약속했다. 하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절도 등 재산형 범죄는 물론  강력범죄도 증가 추세를 보이는 실정이다. 당연히 주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경찰은 언제까지 예산과 인력 부족만 탓하고 있을 것인가. 무엇이라도 대책을 내놔야 주민들이 안심하고 생활 것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실시간 범죄 센터(real-time crime center)’ 확대 방안은 그나마 주목된다. 이 시스템은 사업체와 주거 지역에 설치된 CCTV 영상을 경찰이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재 LAPD(LA경찰국) 산하 3개 경찰서에서 운영 중이며 범행 현장의 실시간 확인 가능, 신속 조치에 효과적이라는 평가다. 이에 LA시의회는 이 센터를 LAPD 산하 21개 전 경찰서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설치된 CCTV가 충분하지 않다는 단점은 있다. 또 일부 인권단체는 사생활 침해 우려를 제기한다. 그러나 지금은 ‘안전한 LA’가 우선이다.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하며 CCTV 설치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LA시는 2026년 월드컵, 2028년 하계올림픽 등 굵직한 국제 행사들을 앞두고 있다. 치안 문제는 LA시의 이미지와 직결된다. 시 정부는 노숙자 문제 해결도 필요하지만 주민의 치안 불안감을 없애주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사설 실시간 범죄 실시간 범죄 실시간 확인 치안 불안감

2024-04-24

[우리말 바루기] ‘가지다’를 줄여 쓰자

번역투 표현으로 볼 수 있는 것 중에 ‘~를 가지다(갖다)’ 형태가 있다. 우리말에서 잘 어울리는 다른 서술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지다’ ‘갖다’를 남용하는 것은 영어의 ‘have+명사’를 ‘가지다’ 또는 준말인 ‘갖다’로 단순 번역하는 데 익숙한 탓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즐거운 시간 가지시기 바랍니다”가 대표적인 예로 “Have a good time”을 직역한 것이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나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가 우리말에서 어울리는 표현이다. ‘가지다’는 소유의 개념 외에도 여러 가지 뜻을 지니고 있어 두루 쓸 수 있는 단어이긴 하다. 그러나 경우를 가리지 않고 마구 사용함으로써 어색한 문장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문제다.   ‘기자회견을 갖다’ ‘회담을 갖다’ ‘집회를 갖다’ ‘간담회를 갖다’ 등은 ‘열다’ ‘하다’ ‘개최하다’ 등이 어울리는 자리에 ‘갖다’를 쓴 경우다.     ‘가지다’를 남용하면 더욱 어색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나는 세 명의 가족을 가지고 있다”가 그런 예로 가족이 소유물인 듯한 표현이다. “나에게는 세 명의 가족이 있다” 또는 “우리 가족은 세 명이다” 등이 자연스런 표현이다.   이처럼 ‘가지다(갖다)’를 남용함으로써 정상적인 우리말 표현 방식이 무너지고 있다. 상황에 따라 ‘열다’ ‘있다’ ‘하다’ ‘보내다’ 등 다른 적절한 단어로 바꾸어 쓰거나 우리말답게 문장을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표현 명의 가족 우리 가족

2024-04-24

[커뮤니티 액션] DACA 신분 자동 연장하라

“우리의 앞날을 지키기 위해 -DACA(서류 미비 청년 추방 유예) 신분 자동 연장하라!”     민권센터와 전국 한인 단체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가 지난 4월 23일부터 시작한 전국 캠페인의 구호다. 현재 전국 각지에서 수십만명의 DACA 수혜자들이 신분 갱신 지연 사태를 맞고 있다. 이들은 신청서 처리가 늦어지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건강보험도 없어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고, 추방에 대한 불안감도 갖게 된다. 신분 갱신 지연은 교육과 여행 등 기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고, 심각한 정신 건강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민권센터와 NAKASEC은 이민서비스국(USCIS)에 즉각적인 조치들을 요구한다. 첫째, 적체 또는 보류 중인 갱신 신청서들을 신속 처리하고, 시스템을 재정비해 수혜자들이 더는 일자리와 복지 혜택을 잃고, 추방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안정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둘째, DACA를 신분 자동 연장 대상에 포함해 수혜자들이 갱신 지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다.   DACA 신분 이민자들은 잇따르는 소송과 반이민자 세력의 공격으로 인한 프로그램 폐지 위협으로 앞날이 불확실하다. 더구나 갱신 지연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USCIS가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수십만명의 DACA 수혜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상황에 놓였고 이는 가족과 커뮤니티는 물론 미국 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DACA 신분이 만료되기 몇달 전 이미 갱신 신청을 했지만 신청서 적체로 인해 처리가 지연되면서 할 수 없이 무급 휴가를 가는 신청자가 늘고 있다. 신청자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법적으로 일할 권리가 박탈되는 것이다.  이 기간에 이른바 ‘불법 체류’가 누적되며, 이후 이민법에 따라 다른 혜택 자격을 잃는 등의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또 이들을 고용했던 기업들은 운영에 심각한 혼란을 겪게 된다. 미국의 많은 기업이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DACA 수혜자들은 구인난 해소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신분 갱신 문제로 일자리를 떠나야 한다면 이는 주요 미국 산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USCIS는 DACA 수혜자들에게 자동 연장을 부여할 권한을 이미 갖고 있다. 현 규정은 취업승인문서(EAD) 갱신 신청자들에게 최대 180일까지 신분 연장을 허용할 수 있다. 심지어 USCIS는 임시 조치로 이 연장 기간을 540일까지 늘리는 권한도 있다. USCIS는 지난 4월 4일 이 권한으로 특정 이민자(망명과 난민 신청자, 영주권 신청 보류 이민자 또는 추방 보류자)들에게 장기간 신분 연장을 보장했다. 하지만 이 조치에서 DACA 수혜자들은 빠졌다.   민권센터와 NAKASEC은 온라인 서명운동(bit.ly/SecureOurFutures)과 함께 DACA 수혜자들의 글과 비디오 수집(bit.ly/SecureOurFuturesStories) 등을 통해 신속한 처리를 촉구하는 활동에 나섰다.     DACA는 시행 12년째를 맞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2012년 만들어진 DACA는 2007년 6월 15일 이전에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온 청년들이 추방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임시 프로그램이다. 한인 6000여 명을 비롯해 총 58만여 명이 DACA 신분으로 취업하고, 교육을 받는 등 권리를 누리고 있다. 한인 수혜자 숫자는 아시아계 가운데 가장 많다. 이 청년들의 앞날을 지키기 위해서는 신분 자동 연장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김갑송 / 민권센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신분 자동 신분 자동 신분 갱신 신분 이민자들

2024-04-24

[살며 생각하며] 억압의 달인에서 소통의 달인으로

“선생님, 아무것도 못 먹겠고, 잠도 못 잡니다. 온몸이 쑤십니다. 이러다 죽을 거 같습니다.” 오랜 세월 가부장적 남편 밑에서 화도, 억울함도 다 참으며 살아온 ‘언니’들의 말이다. 나 하나 참자며 살아온 세월이 하염없이 길어졌다. 그러다 보니 의학적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화병의 신체적 증상들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는 분들이 많다.     고통과 상처를 피하고, 스트레스나 불안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이 사용하는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 중 한국인에게 가장 흔한 것은 억압(Repression)이다. 수직적 인간관계가 강한 한국인들에게 이 방어 기제가 강화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수평적 미국 문화와 달리, 수직적 한국 문화에서는 특히 억압으로 인한 정서적 문제들이 매우 심각해질 수 있다.     어느 세미나에 갔더니 엄마, 돈, 성공, 화, 이 네 단어로 문장을 만들라고 했다. 엄마는 따뜻하다. 돈은 필요하다. 성공, 하고 싶다. 거침없이 세 단어로 문장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마지막 단어인 화는 아무리 해도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도 우리 마음의 표현이라는 강사의 말에, 이 화라는 감정이 그동안 얼마나 내 안에 억압되어 있었는지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후반 완전히 무너져버린 집안 형편 탓에 빚을 내어 입학한 대학, 여유 있고 화려한 대학 생활을 즐기는 친구들 사이에서, 과외지도로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날들, 씩씩한 척했어도, 학교 일찍 들어가 겨우 열일곱 어린 나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화가 났을까. 그러면서도, 나보다 더 힘들 엄마 생각에 억압해 놓을 수밖에 없었던 그 감정들은, 내 무의식 속에 꽁꽁 숨어들면서 이후 나를 불안, 강박, 완벽주의에 시달리게 했다.     사모로 산 30여년 동안에도 가장 억눌렀던 감정이 바로 화였던 것 같다. 물론 좋은 분들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내 눈에는 늘 같은 사람, 같은 목사인 남편을 한때는 좋아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린 일부 교인들, 그리고 그들의 터무니 없는 오해와 비방 때문에 마음은 피를 흘리는데도, 내 얼굴은 늘 웃고 있었다. 이렇게 억압된 화가, 내가 문장 하나도 못 만들게끔 무의식 깊이 억압되어 있었다.     심리치료사가 되고, 북클럽을 운영하며, 낯설었던 나의 무의식과 가까워졌다. 부인하고 있었던 무의식 속의 부정적 감정들을 직면하면서,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늘 불안한 꿈과 강박, 그리고 완벽주의의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요즘은 억울하고 화가 났던 나를 자주 위로한다. 잘 살았다 칭찬하며 자주 어깨를 두드려준다.     내 인생에 일어난 이해되지 않는 일들 때문에 화가 날 때, 억울할 때, 더는 감정을 억압하지 말자. 가족이든 친구든 내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표현하자. 가까운 사람에게 표현하기 어려울 때 전문 상담가도 도움이 된다. 표현만 해도 가벼워진다. 견딜만해 진다. 억압된 감정 때문에 불안이나 화병에 시달리는 많은 분이, 이제라도 마음을 훌훌 표현하면서,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게 되시길 기도한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달인 억압 부정적 감정들 고등학교 후반 화도 억울함

2024-04-24

[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프레리 밴드 포타와토미

지난주 연방 내무부는 일리노이 역사에 있어 큰 결정을 내렸다. 주 북부 지역의 130에이커를 신탁(trust)으로 묶어두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 결정은 원주민 보호 구역으로 설정하기 위한 행정적인 절차다. 이 절차를 통해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에게 자치권에 버금가는 권한을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치권에는 각종 세금 혜택과 연방 정부와의 계약을 체결하는데 있어 우선권을 주며 토지 사용 허가권 등이 포함된다. 또 자치법과 사법권도 들어갈 수 있어 만약 계획대로 실행될 경우 일리노이에서 최초로 원주민 보호 구역이 설립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역사는 미국이 서부로 영토를 확장할 때부터 기인한다.     18세기 초반부터 미국은 서부로의 영토 확장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막대한 영토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중서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원만한 과정은 아니었다. 당연히 무력 충돌이 잦았으며 12개의 조약 등을 통해 원주민 영역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그린빌 조약이다. 1795년 8월3일 체결된 이 조약은 미군과 원주민들의 오하이오주 Fallen Timbers 전투의 결과로 체결된 것이다. 이 조약의 내용 중에는 현재 시카고 강을 포함한 지역도 들어가 있다. 즉 시카고 강과 미시간 호수가 만나는 지역의 6평방마일 지역을 포타와토미 부족이 미국에 넘긴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 연방 정부가 현재의 시카고 지역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시카고 역사의 시작이 가능했던 것이 원주민들과의 조약 때문이라고 봐야 하는 점이다. 반면 이 지역에 오래 전부터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들은 외곽 지역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원주민들이 스스로 땅을 내주고 이주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외부 세력의 무력으로 인해 고향에서 쫓겨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일리노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프레리 밴드 포타와토미 부족 역시 서쪽으로 거주지를 옮겨야만 했다. 1829년 프레리 두 치엔 조약으로 인해 현재의 북부 일리노이 지역에 해당하는 땅을 미국 정부에 양도했다. 이 곳에는 프레리 밴드 포타와토미 부족과 부족장 샤브-에-네이가 살고 있었다. 하지만 1849년 부족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주정부가 이 땅을 점령해 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일리노이를 떠나 미시시피강 서안의 아이오와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고 소수의 부족민만이 일리노이 고향에 거주해 왔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던 지역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100여년 동안 빼앗긴 토지를 되찾기 위해 1에이커씩, 1에이커씩 토지를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원주민들의 노력은 그간 알려지지 않았지만 연방 의회에서는 지원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작년 연방 의회에서는 포타와토미 부족의 영토 확보를 위한 구제안을 통과시켰다. 구제안은 궁극적으로 원주민 보호 구역으로 설정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상정한 로렌 언더우드 연방 하원 의원은 “샤브-에-네이 보호구역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탁으로 우선 설정한 뒤 원래의 토지 소유주에게 권한을 이양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일리노이 최초의 원주민 보호구역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주 정부 차원의 지원도 속속 나오고 있다. 프레리 밴드 포타와토미 부족이 살고 있던 지역 내에 있는 샤보나 레익 주립 공원을 부족에게 넘겨주자는 법안도 주의회에 상정됐다. 만약 이러한 조치들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보호구역에의 사법권과 경찰권, 천연 자원 관리 등도 모두 원주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연방 내무부는 이러한 전환에 대해 "내무부는 신탁으로 확보한 토지를 원주민들에게 이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원주민들의 자기 결정권과 주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원주민 부족들이 자신들의 영토를 확보하고 부족을 보호하며 부족 특유의 방식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일리노이 역사에서 원주민들을 제외할 수는 없다. 일리노이라는 이름 자체가 원주민 언어에서 왔기 때문이다. 도로명이나 도시명 등 일상 생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단어들 중에도 원주민 언어에서 유래한 것이 매우 많다. 포타와토미가 그렇고 알공퀸, 마이애미, 오지브웨, 치페와, 오타와, 호청크, 폭스, 키카푸스 등이 모두 원주민 부족의 이름들이다.     일리노이강변에 위치한 스타브드록이 그렇듯이 원주민과의 갈등은 우리 역사 속 깊이 존재하고 있다. 시카고 이주민들의 첫 정착지라고 할 수 있는 포트 디어본이 1812년 함락된 사건은 일리노이 원주민과 이주민 간의 대표적인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200여년이 지난 후에야 일리노이 원주민들이 자신들이 선대부터 살아 왔던 영역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을 지켜보며 이들이 예전처럼 중서부를 호령하고 살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자신들만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일리노이만의 고유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들 역시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기에. (편집국)         Nathan Park 기자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프레리 일리노이 지역 일리노이 역사 시카고 지역

2024-04-24

[사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 입법 폭주, 협치 부정하라고 175석 준 것 아니다 ━ 1당 보는 국민 눈높이 한층 올라갔음을 명심하길 총선에서 승리한 민주당의 폭주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그제 민주유공자법을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에 회부하더니 어제는 국회의장과 원내대표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이 “국회 상임위원장을 표결로 선출하자”며 상임위 독식론을 꺼냈다. “협치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당 전략기획위원장)는 말까지 나온다. 대통령과 여당에 그렇게 협치를 촉구하다 선거에서 이기자 협치는 필요없다고 하는 모양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 간 영수회담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민주유공자법은 경찰관 7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산 동의대 사건, 반국가단체 판결을 받은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 전교조 해체 반대 운동 관련자까지 민주유공자 심사 대상으로 만드는 법이다. 본인은 물론 부모와 자녀까지 지원해 준다. 2000년 이후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1169억원의 보상이 이뤄진 이들에게 추가로 그 가족까지 도와주자는 이야기다. 일반 국가유공자는 자격 여부를 보훈심사위원회가 심의·의결하지만, 민주유공자 특혜를 받을 대상자 명단과 공적은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비밀이라 깜깜이 심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어떤 사람을 민주유공자로 인정할지에 대한 기준마저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늘 ‘뒷문’이 열려 있다. 이런 허술한 법을 총선 승리를 빌미로 밀어붙이는 속내는 뻔하다. ‘운동권 셀프 특혜법’에 다름없다. 입법 독주뿐이 아니다.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가 제기한 검찰의 ‘술판 회유’ 의혹에 “100% 사실로 보인다”(이재명 대표)고 했다가 이원석 검찰총장의 정면 반박이 나오자 돌연 침묵으로 돌아선 것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총선에서 승리했으니 이 대표 관련 사건의 수사와 재판에 전방위 정치적 압박을 가해도 된다고 보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왜곡하면 안 된다. 의석수는 175석(민주당) 대 108석(국민의힘)으로 크게 차가 났지만, 두 정당의 득표율은 50.4%와 45.1%로 5.4% 차밖에 나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민주당 주도의 국회 운영을 택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마음대로 하라는 프리패스를 준 게 아니다. 100% 전권을 받은 것처럼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민주당이 3년 후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수권정당에 걸맞은 합리적·균형적 사고와 협력의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만 더 많은 국민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이번 총선 승리로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 수준, 눈높이가 한층 올라갔음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총선 승리 답례품처럼 나랏빚 13조원을 들여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돈을 나눠주자는 포퓰리즘 발상 갖고는 국민의 믿음을 얻긴 힘들다. 내주 중 관측되는 영수회담에서부터 달라진 민주당의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

2024-04-24

[사설] ‘아시아 허브’ 대한민국 되려면 투자 친화적 환경 시급

━ 아태 본부, 싱가포르 5000개 홍콩 1400개…한국은 100개 ━ CEO 형사책임 등 ‘갈라파고스 규제’ 철폐로 투자 유인을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가 ‘아시아 비즈니스 허브’로의 도약을 막는 최대 걸림돌로 지적됐다. 지난 23일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의 ‘2024년 암참 국내 기업 환경 세미나’에서다. 한국의 투자 매력을 높이려면 예측 가능한 경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올해 초 암참이 대통령실에 보낸 ‘한국의 글로벌 기업 아태 지역 거점 유치 전략 보고서’ 내용과 맥을 같이한다. 글로벌 기업이 한국 진출의 걸림돌로 꼽는 요인은 여럿이다. 우선 예측 불가능한 조세 집행이나 규제 정책 등이 한국행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비롯해 산업재해나 세금과 관련한 여러 영역에서 최고경영자(CEO)가 형사책임에 노출될 위험이 큰 것도 한국으로의 이전을 고심하게 하는 이유로 지적됐다. 글로벌 기업의 경우 CEO가 형사처벌 소송에 휘말리는 경우가 없는데, 한국이 CEO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경직된 노동시장도 글로벌 기업에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암참이 지적한 문제는 새삼스럽지 않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꾸준히 언급되고, 개선 필요성이 논의됐던 것들이다. 다만 달라진 건 주변의 상황과 분위기다. 암참이 회원사를 상대로 한 설문에 따르면 아태 지역 본부 소재지로 적합한 지역으로 한국은 싱가포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세계 10위의 경제력에 한국 기업이 반도체와 전기차 공급망, 인터넷 플랫폼 등 산업에서 주도적인 모습을 보이는 만큼 이런 측면에서는 충분한 매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중 갈등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이어진 봉쇄 조치 등으로 인해 ‘탈(脫)중국’ 흐름이 가시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평가됐다. 이제 필요한 것은 투자처로서 한국의 매력을 끌어올려 글로벌 기업의 한국행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것뿐이다. 이를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각종 규제를 개선하는 한편, 글로벌 기업의 불안감을 키우는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 기업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형사책임도 완화해 주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하기 위한 노동개혁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 싱가포르에 자리 잡은 글로벌 기업의 아태 지역 본부는 5000여 개, 홍콩은 1400여 개다. 반면에 한국은 100개 이하다. 기업이 오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투자도 늘어난다. 글로벌 산업계의 영향력도 확대할 수 있다. 결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 ‘아시아 허브’란 구호만 외쳐서 될 일이 아니다. 글로벌 기업을 잡기 위한 규제 개혁과 합리적인 정책 개선이 시급하다.

2024-04-24

[중앙시평] 좁아지는 보수의 정치인구학

이번 총선은 여러 교훈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는 한국이 바야흐로 ‘정치인구학의 시대’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인구는 크게 세 가지 요인에 따라 변한다. 출생, 사망, 이주다. 그리고 인구의 변화는 정치적 결과를 낳는다. 과거에도 한국에서 정치인구학의 효과는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영호남 인구 격차의 정치적 결과라든가, ‘안보·성장 보수’와 ‘운동권 86세대’ 간의 대결 같은 것들이다. ‘안보·성장 세대’ 점차 퇴장하면서 보수-진보 간 균형 급속하게 파괴 나이들면 보수 된다는 것도 옛말 보수의 변신과 각오가 필요한 때 전쟁과 가난을 경험한 보수적 세대와 운동의 승리를 경험한 86세대 간의 정치적 차이는 그들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는 동안에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것은 마침내 그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앞으로 당분간 불균형은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보수정치에는 불길한 소식이다. 균형이 무너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안보 보수’의 사망 혹은 질병일 것이다. 한국전쟁 때 10살이었다 하더라도 지금 80대 중반이다. 한국이 절대 빈곤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 1970년대에 10살이었다면 60대 후반이다. 보수의 아성을 이루던 세대는 사라지고 있는데 진보의 아성은 견고하게 존재한다. 그 결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에 대한 지지의 세대별 분포다. 사람들은 막연히 청년은 진보적이고 노인은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큰 틀에서 보아 2012년 대선까지는 맞는 말이었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고령층의 표를 싹쓸이했고 문재인 후보는 젊은 층의 표를 싹쓸이했다. 문재인 정부를 겪으면서 젊은 세대의 젠더 분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약간 보수적으로 투표하던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특히 젊은 세대 여성들은 급격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2030 남성들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빠른 속도로 보수화했고, 젊은 세대에서의 이러한 젠더 분화는 지난 대선에서 소위 ‘갈라치기’ 논란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진보정치에 대한 젊은 여성 유권자의 지지는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못 미치지만 아직도 견고하다. 이 분야에선 세계 수십개 국가의 경험에 대한 연구들이 쌓여 있는데, 확고한 결론은 여성 유권자들이 한번 진보화하면 다시는 보수 성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또한 보수정치에는 불길한 소식이다. 18대 대선에서 이번 총선까지 12년이 지나는 동안 유권자들은 나이를 먹었다. 박근혜 후보를 흔들림 없이 지지했던 안보 보수 중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고, 진보의 세대적 기반인 86세대 유권자 중 절반 가까이가 60대에 접어들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을 가장 많이 지지한 세대중 4050은 예전과 별 차이가 없지만, 단연 눈에 띄는 것은 60대가 진보의 새로운 지지기반으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이들은 나이를 더 먹더라도 여전히 비슷한 정치성향을 유지할 것이다. 젊었을 때 진보적이었던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서 보수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여기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들이 있다. 인구집단의 정치적 성향은 두 가지 효과의 상호작용으로 결정된다. 하나는 젊은 시절의 강렬한 경험이 평생 지속되는 것이다. ‘코호트 효과’라고 부른다. 다른 하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보수화해가는 것이다. ‘연령 효과’라고 부른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정치성향은 달라진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대체로 1960년대 초반 출생자들까지는 연령 효과가 더 강하다. 이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보수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6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들부터는 코호트 효과가 더 강하다. 이들은 청년 시절 학생운동의 경험을 평생 가지고 가면서 나이를 먹어도 보수화하지 않는다. 세상을 점령하는 가장 쉬운 방식은 우리 편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다. 탄압받던 기독교인의 높은 출산율로 로마제국은 개종할 수밖에 없었고, 히스패닉의 높은 출산율은 앵글로 아메리카의 기반을 흔든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교육수준이 높고 온건한 종교적 믿음을 가진 집단의 출산율은 낮은 반면, 교육수준이 낮고 극단적 종교 신념을 가진 집단의 출산율은 압도적으로 높다. 이번 총선 과정에서 민주당이 공천 파동으로 가장 수세에 몰렸을 때에도 약 30%의 지지를 받았다. 선거에서 이기는 절대적 득표율을 51%라고 한다면 민주당은 기존 30%에 21%를 더 모으면 되지만, 국민의힘은 뼈를 깎는 분석과 변신이 없는 한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0’에서 시작해 51%를 모아야 하는 상황에 근접해 갈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앞으로 정치인구학적 불균형이 가져올 결과들을 보여주는 서막에 불과하다. 진보 진영에서 범죄 혐의를 벗지 못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후보나 상상을 초월하는 막말로 논란을 빚은 후보조차 당선되는 것을 보면서 분개했을 보수 성향 유권자에게, 정치인구학의 대표적 학자인 에릭 카우프만의 말을 전한다. “이성의 시대여 안녕. 혼돈의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2024-04-24

[김현기의 시시각각] 차기 대통령의 조건

갑자기 튀어나온 후보는 뽑지 말자 '호승심' 성향의 검찰 출신도 곤란 유튜브가 아닌 NYT·FT 보는 이 뽑자 #1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23%라는 갤럽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윤 대통령이 '믿었던' 기시다 일본 총리의 지지율이 22%니 거의 붙은 셈. 이대로라면 곧 역전이다. "다른 나라 정상은 더 낮다"고 눙칠 날도 얼마 안 남았다. 요즘 어느 모임에 가도 윤 대통령에 대한 불만·분노가 넘친다. 보수 인사들이 더 그렇다. "울화통이 터져 뉴스도 안 본다"는 분도 많다. 대략 10명 중 9명은 "윤 대통령이 변하겠다고 하지만 누가 그걸 믿겠느냐"고 한다. 취임 후 2년 가까이 거의 '땡전 뉴스'에 가까울 정도로 현 정부를 낯뜨겁게 편들던 보수 신문도 이제 와 대통령 공격에 열을 낸다. 어이없다. 대통령을 "난 잘하고 있어"란 착각, 오만에 빠지게 만든 책임 따윈 안중에 없는 듯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국민의힘의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 '노부영' 정당이란 말이 딱 맞다. 70대 이상 노인, 부자 동네, 영남에서만 힘을 쓴다. 이젠 60대도 외면한다. 서울·경기·인천의 수도권 122석 중 건진 건 고작 16%. 보수 결집론은 그저 TK·PK 이야기다. 의미도 실체도 없다. 이 정도면 집권당이라 불릴 자격도 없어 보인다. 사실 선거 전부터 '야당 단독 과반 저지'가 목표인 정당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이대로라면 4년 후 총선 4연패는 피하기 힘들다. 불편한 진실 또 하나. 선거 결과 지도는 또다시 서쪽 파란색, 동쪽 빨간색으로 정확히 양분됐다. 결국은 지도자 책임이다. 그나마 하나 건진 건 있다. "아, 다음에는 이런 대통령을 뽑아선 안 되겠구나"란 각성을 유권자들이 진지하게 했다. 그 각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별개 문제지만 말이다. #2 내가 보는 차기 대통령의 조건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갑자기 튀어나온, 이른바 '갑튀 후보'는 뽑지 말자. 멀쩡한 국민이 왜 "앞으로 안전벨트 단단히 매라"는 말을 들어야 하나. 미국의 오바마도 눈 뜨고 일어나니 대통령 된 것 같지만 실은 1996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 된 이후 8년의 정치 경험을 쌓았다. 일본의 총리는 최소 20년 검증을 거쳐야 후보 반열에 오른다. 중국은 더 하다. 초급 간부 때부터 공장과 지방·중앙부처 등 이런저런 자리를 돌게 하며 지속적인 검증을 한다. 국가관은 어떤지, 능력은 거품이 아닌지, 돈을 밝히는지, 부하를 머슴 다루 듯하지는 않는지, 국제적 감각은 있는지 검증한다. 짧게 20년, 길게는 30년 반복한다. 중국이 민주적이진 않지만 능력 있는 지도자를 뽑을 수 있는 배경이다. 둘째, '올바른 태도'를 지닌 인물을 뽑자. 건들건들하지도 말고, 거들먹거리지도 말고, 국민을 얕잡아보지도 말아야 한다. 긴장감·책임감을 24시간·365일 유지할 수 있는 인물 아니면 5년을 제대로 이끌 수 없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적어도 다음번은 검찰 출신은 안 나서면 좋겠다. '정치하는 대통령'에는 검사 출신들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지난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이라 보기 때문이다. 정치의 세계는 호승심(好勝心·반드시 이기려는 마음)보다 호민심(護民心·국민을 지키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총선에서 "저는 검사 처음 시작한 날 제가 평생 할 출세 다 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맞다. 딱 그 정도에서 멈춰 정치를 바라보기만 했으면 좋겠다. 셋째, 다음번에는 결집을 촉구하는 지도자 말고 확장을 호소하는 지도자를 뽑자. 가두리 양식장에 지지자를 가둬놓으면 본인도 덩달아 가두리 양식장에 갇히는 법이다. 극단적 유튜브의 정신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도자는 그저 확증편향의 동네 부족장급이다. 광활한 바다로 나아가야 보수건 진보건 중도의 마음을 낚을 수 있는 법. 유튜브가 아니라 뉴욕타임스·파이낸셜타임스를 보는 지도자를 뽑자. 그러면 대만해협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 마지막으로 부록 하나 추가. 기왕이면 배우자 관리도 잘한 지도자면 좋겠다. 김현기(luckyman@joongang.co.kr)

2024-04-24

[시론] 정치가 도덕에 감응하지 못하는 ‘잿빛 시대’

대파 값이 민심인 시대다. 사람들은 민심이란 표현에 쉽게 주술(呪術)에 걸린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하면 다들 경배한다. 그렇다고 표심이 민심을 온전히 반영하는가. 어쨌든 이번 총선은 여당인 국민의힘이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참패했다. 4년 전에는 야당으로서 참패하더니, 이번에는 집권 여당으로서 참패했다. 보수의 초토화 위기에서 겨우 불씨를 살리고도 집권당의 이점을 활용 못 하고, 세 번 연속 다수당 자리를 놓치면서 정치적 소수 세력이 됐다. 이 점에 대해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듯싶다. 비리와 막말에도 문제 후보 당선 도덕적 심판과 선거 결과 어긋나 그래도 보수 정당은 품격 지키길 정치 전문가들이 보수 세력의 몰락 원인을 잘 짚어주겠지만, 나는 인문학자로서 이번 총선에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살펴보고 싶다. 이번 총선은 요컨대 ‘명품백’이 ‘대장동’을 이긴 총선으로 볼 수 있겠다. 애초부터 이번 총선은 리스크와 리스크의 대결이었다. 명품백 리스크가 가라앉나 싶었지만 이를 다시 상기시킨 것은 ‘이종섭 호주 대사 사태’였다. 결과적으로 이번 총선을 통해 사람들은 천문학적 집단 비리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대장동 사건에 놀라울 정도로 관대했고, 반면 명품백 전달 동영상에는 더 분노했다. 몇 년 전에 아파트값이 수억 원 폭등한 것은 그러려니 하면서 지금 대파 몇천 원이 오른 것에는 분노했다. 이런 분노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선거 막판에 민주당 김준혁 후보의 검증되지 않은 일련의 역사 해석, 양문석 후보의 거액 편법 대출 및 강남 아파트 매입 의혹 등 초대형 악재가 터져도 보란 듯이 대장동 변호사 다섯 명 전원이 당선했다. 지금 우리는 분노 정치의 시대에 들어섰다. 말하자면 정치가 도덕에 감응하지 못하는, 울울한 잿빛 시대에 들어서고 만 것이다. 정치의 정(政)자는 ‘바를 정(正)자’였다. 공자가 그랬다. “그대가 올바르면 누가 감히 올바르지 않겠는가.” 정치인이 반듯하면 국민도 반듯해진다. 정치는 반듯함을 실현하는 행위다. 공자 같은 선현의 시대에는 지도자가 분노를 표출하고 백성이 이에 따르는 게 정치 행위라는 생각일랑 전혀 하지 않았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정치 이전에 주술이 있었다. 정치는 제정(祭政)일치의 주술을 극복하기 위해 생겨났다. 그런데 정치가 주술을 걸면 사람들은 주술에 걸리고, 주술에 걸린 사람들이 다시 누군가에게 주술을 걸면 정치는 반듯함을 잃고 악순환에 빠진다. 나는 이번 총선을 지켜보면서 한국사회의 젠더 감수성이 아직 흐릿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깊이 들여다볼 문제다. 하늘도 놀랄 이대생 성 상납을 주장한 김준혁 후보는 물론, 미투(me too) 성범죄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몬 민주당 여성 후보도 당선했다. 야당 대표가 ‘이·채·양·명·주(이태원·채상병·양평도로·명품백·주가조작)’라는 주문을 줄기차게 외자 여론이 술렁거렸다. 이러니까 정치인들이 무슨 망언인들 못 하랴.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결과적으로 압승했지만, 완승은 아니다. 선거 과정에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면서 낮은 도덕 감수성을 자명하게 보여줘서다. 국회의원 의석 몇 석을 포기하더라도 여전히 절반을 훌쩍 넘긴 거대 야당인데, 서울 강북을에서 특정 후보를 내치기 위해 잇따라 문제 있는 후보를 버젓이 공천하고, 김준혁·양문석 후보 등을 굳이 끝까지 비호해야 했을까. 선거에서 의석에 따라 여의도의 갑과 을 위치가 수시로 뒤바뀐다 해도 선과 악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퇴행을 우리는 결코 수용할 수 없다. 나는 22대 국회에 입성할 보수적인 소수 정치 세력이 급격히 빛바래가는 ‘보수의 품격’을 그래도 지키라고 주문하고 싶다. 또한 나쁜 정객처럼 대파 한 단에 정치적 주술을 걸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정치적 심판과 도덕적 심판이 별개가 아니라는 가능성의 실마리를 보여준 2030 세대에게 나라의 미래를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을 두고 ‘국민의 위대한 승리’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이야말로 비리 종합세트라는 대장동의 기억을 애써 지운 선거다. 비리가 있어도, 막말을 쏟아내도 부적격자를 제대로 여과하지 못하는 선거 시스템의 기능 부전을 재확인한 선거로 기억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송희복 문학평론가

2024-04-24

[손해용의 시선] 75세 이상, 넷 중 한 명은 아직도 일한다

경기도 부천시의 한 재가노인센터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황모(71, 인천시 남동구)씨. 그는 10여년 전 중소기업에서 정년퇴직한 뒤에도 계속 일을 놓지 않고 있다. 하루 6시간씩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돌보면서 월 150만원을 번다. 많다고는 할 수 없는 금액이지만, 그는 일하면서 삶의 활력을 느낀다. “이 일 덕분에 지금껏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살고 있다. 새로운 일을 찾기 위해 현재 웃음 치료 자격증을 공부하고 있는데, 체력이 닿는 데까지 일하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고령화로 늘어나는 워킹 시니어 이젠 노동력 부족 난제 해결 열쇠 위기 아닌 기회로 패러다임 전환 황씨처럼 고희(古稀·70세)를 넘은 고령의 나이에도 생활 전선에 뛰어든 ‘워킹 시니어(Working Senior)’가 이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70세 이상 취업자는 지난해 184만9000명으로 5년 새 51.6%(63만명) 증가했다. 연간 고용률은 2018년 24.3%에서 가파르게 올라 지난해 처음으로 30%대를 기록했다. 특히 통계청은 75세 이상 고용률을 지난해 처음으로 따로 산출했는데, 24.3%나 됐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4명 중 1명은 일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한국의 워킹 시니어는 두드러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인이 노동시장에서 떠나는 ‘유효 노동 시장 은퇴연령’은 남성이 72.9세, 여성이 73.1세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늦다. OECD 평균(각각 65.3세·63.6세)과의 격차도 상당하다. 한국의 저출산·고령화가 유독 심각한 데다 과거와 달리 자식에게 재정적으로 기대기 어려운 점, 의료기술 발달로 신체적 건강 수준이 높아진 점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단지 워킹 시니어들의 노동 의지가 커졌기 때문만으로 볼 수는 없다. 임금수준이 낮은데 노동 강도는 높아 청년층이 꺼리는 소위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업종을 중심으로 고령층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새로 대체할 인력이 없다 보니 기존 근로자가 나이가 들어도 고용을 이어가는 경우도 많다. 실제 지난해 70세 이상 취직자의 산업별 분포(월평균)를 보면 농업·임업 및 어업(30%),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23%), 공공행정·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8%), 도매 및 소매업(7%) 중심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하반기 주요 산업(300인 미만) 중 구인난으로 미충원 인원(구인인원-채용인원)이 높았던 업종인 ▶광공업(4만1334명) ▶운수 및 창고업(1만6185명) ▶도매 및 소매업(1만4070명)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1만1941명)과 유사하다. 주요 미디어에 비친 워킹 시니어의 모습은 서글프다. 허드렛일을 하고, 저임 노동에 시달리며, 생계를 유지하거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터로 내몰린다. 하지만 일하는 노인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일은 아니다. 궁핍한 노후는 개선해야 할 부분이지만, 이들이 일터예 계속 머무르는 것이 필요한 측면도 있다.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는 시대에 워킹 시니어의 노동력 활용은 한국 경제·사회가 지속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워킹 시니어의 상당수는 과거 70대와 달리 건강하고, 지식이 풍부하며, 정보기술(IT)에도 능숙하다. 청년이 기피하는 업종이나 저출산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일자리 공백 문제를 시니어 인력으로 완화할 수 있다. 실버택배·실버세차·노노(老老)케어처럼 젊은 세대는 꺼리지만, 워킹 시니어는 주저하지 않는 일도 많다. 이를 통해 벌어들인 소득은 은퇴 후 노인 빈곤 문제를 덜어준다. 마침 고령친화산업도 확장하고 있다. 노인들의 생산력과 소비력을 동시에 올린다면 저성장, 노동력 부족, 연금 고갈 등 한국의 많은 난제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일자리 구조 변화와 ‘노인이 일하는 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일정한 나이를 고령의 기준으로 삼아 노동시장에서 배제하는 제도를 손봐야 한다. 65세 이상인 법정 노인 기준을 올리고, 고령 인력을 계속 고용하는 기업들은 정부·지자체가 더 지원해야 한다. 고용 유연성 확보도 필요하다. 연공서열식 직급·임금 체계를 바꾸고, 탄력적 근무제 등을 도입해 워킹 시니어들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다가올 고령사회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노동력 부족에도 대비할 수 있다. 고령 인구 증가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손해용(sohn.yong@joongang.co.kr)

2024-04-24

가창력 논란에 자기 복제…본질 놓친 하이브의 위기 [이지영의 문화난장]

위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방탄소년단(BTS)을 낳은 K팝 최대 기획사 하이브가 흔들리고 있다. 하이브 산하 쏘스뮤직의 5인조 걸그룹 르세라핌은 최근 미국 최대 음악 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트 페스티벌’에서 망신을 당했다. 지난 13일과 20일 각각 40여 분씩 단독 공연을 펼쳤는데, 음정 불안과 음 이탈 등 가창력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지난 2022년 데뷔한 르세라핌은 ‘K팝 그룹 중 데뷔 후 최단 기간 코첼라 입성’ 기록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첫 공연 후 코첼라 공식 인스타그램 등 관련 SNS에는 “노래가 아니라 샤우팅” “소속사는 보컬 연습 안 시키나” 등의 혹평이 세계 각 나라의 언어로 이어졌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두 번째 공연에선 AR(미리 녹음된 음원) 소리를 과도하게 키워 마치 립싱크 같았다는 조롱까지 받았다. 르세라핌, 코첼라서 음이탈 망신 아일릿은 ‘뉴진스 베끼기’ 잡음 그래미상 후보에 한국 가수 없어 실력과 진정성 등 본질 돌아봐야 ‘짭진스’ 논란 낳은 안일한 생존 전략 이들이 검정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귀국한 지난 22일, 더 큰 뉴스가 하이브의 위기 상황을 알렸다. 하이브가 민희진 어도어 대표에 대해 ‘경영권 탈취 시도’를 이유로 감사에 들어간 것이다. 민 대표 측은 이를 부인하고, 이번 사태를 ‘아일릿의 뉴진스 베끼기’ 의혹 제기를 한 데 따른 하이브의 언론 플레이라고 주장했다. 아일릿의 소속사 빌리프랩과 뉴진스 소속사 어도어는 모두 하이브 산하 레이블이다. 경영권 탈취 시도의 진위 여부와 별도로 여론은 민 대표의 ‘자의식 과잉’을 비난하는 쪽으로 흐른다. 자신이 세상에 없던 콘셉트로 뉴진스를 만들어낸 양 ‘민희진풍’ 운운한 데 대한 반감이다. 하지만 지난달 데뷔한 아일릿을 보고 “뉴진스인 줄 알았다”는 반응이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긴 생머리의 청순한 다섯 소녀. ‘짭진스’란 비아냥이 근거없진 않았다. 유행을 만들고 따라가는 게 대중문화의 속성이라지만, 하이브란 같은 회사 안에서 이렇게 비슷한 걸그룹이 재생산됐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성공 공식의 자기 복제라는 가장 근시안적이고 안일한 생존 전략을 펼쳤기 때문이다. 스스로 수명을 단축하는 자충수다. K팝의 위기는 하이브 방시혁 의장이 공론화시킨 화두다. 지난해 관훈포럼과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연이어 등장해 K팝 시장의 위기를 거론했다. 그의 경고대로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됐다. 올 2월 열린 그래미상 시상식은 K팝 가수 후보가 한 명도 없는 상태로 치러졌다. 지난해까지 3년 연속 후보에 올랐던 BTS의 공백이 실감 났다. 지난해 11월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선 신설된 4개의 K팝 부문에서만 수상자가 나왔다. 충성도 높은 ‘헤비 팬덤’에 의존해 성장한 K팝 시장의 기형적 현상도 돌출됐다. 걸그룹 에스파 카리나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2월 카리나의 연애 사실이 알려진 뒤 팬들의 비난이 빗발쳤고, 결국 카리나가 자필 사과문을 올리고 연인과 결별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헤비 팬덤’ 충성도 의존해 K팝 성장 음원 스트리밍 시대에 앨범 판매 비중이 너무 높은 것도 불안한 요소다. 지난해 K팝 음반 판매량은 1억장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앨범 판매량으로 줄 세우기를 해 팬덤 간 경쟁심을 자극한 결과다. 앨범에 포토 카드를 무작위로 끼워 넣어 다량 구매를 유도하는 마케팅 기법은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도 받았다. K팝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가벼운 마음으로 음악을 즐기는 ‘라이트 팬덤’의 확장이 필수다. ‘내 새끼 지상주의’가 아닌 팬들에겐 기본 자질을 못 갖춘 가수는 관심거리가 못 된다.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답 역시 방시혁 의장 스스로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2년 전 서울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며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스스로 진단과 처방을 내렸던 것이 지금까지 회사를 살아남게 한 결정적 이유”라고 했다. 데뷔 당시 대형 기획사 소속이 아니란 이유로 ‘흙수저 아이돌’로 불렸던 BTS는 실력과 진정성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지난 10여 년간 K팝은 한류의 선봉에 서 있었다. 지난해 파행 위기의 잼버리에 구원투수로 등장했듯, 국가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노래 못하는 가수, 베껴 만든 그룹으론 오래 못 갈 위상이다. 하이브와 어도어는 각각 법무법인을 선임해 법적 공방을 준비하고 있다. K팝 톱 기업의 진흙탕 내분을 지켜보게 된 상황이 더욱 답답하다. 이지영(jylee@joongang.co.kr)

2024-04-24

[김현철의 퍼스펙티브] “중국 관시로 4만명 희생…한국은 낙하산에 수십조 손실”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의 값비싼 대가 2008년, 진도 8의 중국 쓰촨(四川) 대지진은 무려 8만7000명의 사망자와 1만7000명의 실종자가 발생한 대참사였다. 건물 붕괴로 인한 사망자가 대다수였다. 피해 지역 사진을 살펴보던 홍콩대 경제학과 이밍 카오(Yiming Cao)교수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몇몇 건물은 존재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완전히 무너져 내렸지만, 일부 건물들은 건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 보도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쓰촨성 두장옌시 신장 초등학교는 처참히 무너졌지만, 건축 시점이 크게 다르지 않은 바로 옆 유치원과 호텔은 멀쩡했다(사진). 2008년 쓰촨대지진 비극 당시 ‘관시 시장’때 건물 75% 더 붕괴 MB 때 공기업 인맥경영 성행 공사 지연·부실 늘며 45조 손실 올해 150여 곳 공공기관장 교체 선정 기준·결과 투명한 공개를 관시가 가져온 참혹한 결과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궁금증이 커진 그는 1978년부터 2007년 사이 세워진 쓰촨성의 1065개 학교, 병원, 청사 등 각종 공공건물의 정보를 수집했다. 건축 연도, 내진설계 기준 등의 정보와 함께 지진으로 인한 피해 정도를 확인했다. 큰 피해를 본 건물은 대부분 내진 설계를 무시한 부실 공사가 원인이었다. 아무리 대지진이 일어났지만, 그 피해는 이보다 훨씬 적었어야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진 설계 기준을 무시한 건물이 지어질 수 있었을까? 그는 관시(關係) 문화, 그중에서도 동향(同鄕) 관계에 주목했다. 중국에서 관시란 사람들 간의 비공식적인 인적 연결관계 즉 연줄이나 인맥을 말한다. 이것이 중국의 대표적인 학연·지연·혈연 등에 기반한 사적 이익공동체이다. 건축업자의 이익을 위해 내진 설계가 무시될 수 있으려면 건물의 준공 및 사용승인의 권한을 쥔 시장과 건축업자 사이의 관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장도 혹시 모를 감사와 처벌에서 보호되어야 하니 그의 상급자와의 관시가 필요하다. 시장을 임명하는 상급자는 동향 관시를 통해 본인에게 충성심이 높은 사람을 시장으로 선발할 수 있다. 그 결과 경쟁자보다 덜 유능하고 좀 더 부패 가능성이 높을지라도 동향이라는 이유로 시장에 임명된다. 이렇게 임명된 시장은 상급자와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며, 부패나 업무 태만을 일삼아도 그의 상급자가 보호한다. 이런 부패한 관시 사슬을 통해 지방 기관의 건축 규정 준수와 같은 법 집행력이 약화된다. 관시는 정말 참사의 원인이었을까? 이밍 교수는 건물 준공 당시의 시장과 그들의 상급자가 같은 고향 출신인지 확인했고, 그 분석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관시 관계에 있는 시장이 관리하는 시에서 준공된 건물이 그런 관계가 없는 시장이 준공 허가한 유사 건물보다 붕괴 확률이 무려 75%나 높았다. 아쉽게도 그는 자료 부족으로 논문에서 건축업자와 시장 사이의 관시의 효과는 살펴볼 수 없었다. 그런데 직접 건축하는 건축업자와 준공을 허가하는 시장과의 부정적 관시 효과는 아마도 도지사와 시장 사이의 관시 효과보다 훨씬 더 부정적이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이러한 부패는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준공 허가 혹은 감사 과정에서 일부 적발될 수도 있겠지만, 부패한 시스템은 이조차도 무시했다. 그 결과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할 비용은 가혹했다. 관시의 부정적 효과로 인해 무너지지 않았을 건물이 75%나 더 무너졌고, 이는 4만명 이상의 추가 사망을 초래했다. 쓰촨성 지진은 자연재해였지만, 피해가 훨씬 커진 것은 역대급 인재 때문이었다. 한국 공기업 낙하산 인사의 효과 만일 관시를 비웃으며, “역시 중국은 후진국이다. 대한민국은 다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교환학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던 독일인 학생 데이비드 쇤헤어 (David Schoenherr)는 2008년 당시 한국에서 유행하던 “고소영 S라인”이라는 말에 흥미를 느꼈다. 이는 국정 요직에 이명박 대통령이 관련된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서울시 출신 인맥들 위주로 임명되는 현실을 풍자한 말이다. 예를 들어 그의 취임 직후 42개 대표적 공기업에서 고려대 혹은 현대건설 출신 사장이 단 3명에서 12명으로 늘어났다. 경제학 박사 과정에 진학한 그는 졸업 논문으로 이명박 정부 낙하산 인사의 효과를 분석했다(Schoenherr, 2019). 그의 논문은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덕분에 그는 프린스턴대 교수가 되었다. 대통령 인맥(고려대와 현대건설)에 기반한 낙하산 인사로 공기업 사장과 민간기업 사장 사이의 연결 고리가 강화되었다. 대규모 정부 입찰에 참여한 이력이 있는 195개 민간 기업 중 16%인 31개 회사에 이러한 연결 고리가 생겼다. 이를 ‘인맥 기업’이라 하겠다. 인맥 기업은 그렇지 않은 나머지 164개 ‘비인맥 기업’에 비해 정부 입찰에서 크게 선전했다. 2008년 이후 대통령 인맥 기업은 비인맥 기업에 비해 정부 입찰 수주액이 자산대비 약 3%포인트 (기업당 평균 약 1000억원) 증가했다(그림 1). 이렇게 인맥에 의해서 성사된 계약의 성과는 어땠을까? 이러한 인맥은 양질의 기업을 골라내고, 계약 진행 시 발생하는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는 등과 같은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쟁력이 낮은 기업에 연줄이 있다는 이유로 특혜가 주어진다면 공정하지도 않고, 사회적 부작용도 예상된다. 다행히 정부 입찰로 이루어진 모든 계약의 성과는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나라장터에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어 심층적 분석이 가능했다. 분석 결과는 씁쓸함을 안긴다. 조달을 더 많이 한 ‘인맥 기업’의 계약 성과가 크게 나빴다. 가령, 계약 이행이 제대로 되지 않을 확률이 8~11%포인트 증가했다(그림 2). 건축 및 토목 분야는 더욱 심각해서 공사가 지연되거나 건설 부실 확률이 ‘비인맥 기업’에 비해 16~21% 포인트 높았다. 이로 인한 국가의 손실은 2008년과 2011년 사이 무려 45조원(GDP의 0.41%)으로 추산된다. 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본인의 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사적 편익을 주고자 이런 인사를 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의 커리어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그는 능력 있는 재계 인사들을 많이 알고 있었고, 이들이 공기업을 더 잘 이끌 것이라 믿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공기업과 민간 기업의 연줄이 강화되고, 그 결과 이토록 큰 부정적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고는 그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외국 공공기관장 임명은 어떻게? 외국도 비슷한 문제가 존재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가마다 다양한 제도가 도입되었다(OECD, 2013). OECD는 공공기관 임원 인사의 우수사례로 영국, 프랑스, 뉴질랜드를 인용했다. 영국은 주무 부처 장관이 기관장을 임명한다. 이 과정을 국무조정실이 감독한다. 프랑스는 대통령이 공기업 사장을 임명하지만 후보자의 학위, 경력, 업적 등이 잘 평가된다. 후보자에 대한 의회의 자문과 동의가 필요하다. 뉴질랜드는 이사회가 기관장을 임명하고, 공기업 관리실이 기관장의 업무 수행에 필요한 전반적 요건에 대한 질적 평가를 하기도 한다(허경선 2013, 허경선 2018). 우리에겐 어쩌면 임명 과정의 투명성 제고가 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공기업의 사장이 반드시 해당 분야의 전문가여야만 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기존 관행에 젖은 조직 쇄신을 위해 혁신적인 외부인사의 발탁도 필요한 법이다. 그렇기에 선정의 세부 기준과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사인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150여 명의 공공기관장이 교체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인사를 ‘낙하산’으로 규정하며 이를 답습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사실 전임 대통령 중 이런 약속을 하지 않은 사람도, 또 지킨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를 통해 대통령과 친분이 없이도 혁신적인 전문가가 많이 임명되기를 기대해본다. 국민도 눈 부릅뜨고 잘 지켜보자. 중국 쓰촨성에서는 관시 인사로 2008년 4만 명이 추가로 죽었고, 같은 해 낙하산 인사로 인한 대한민국의 국가적 손실이 45조원이었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정책학과 교수, 의사 참고문헌 Yiming Cao, Audit of God: Hometown Connections and Building Damage in the Sichuan Earthquake (2024), Working paper Schoenherr, David. "Political connections and allocative distortions." The Journal of Finance 74.2 (2019): 543-586. OECD, Boards of Directors of State-Owned Enterprises An Overview of National Practices (2013) 허경선, 공공기관 임원 선임제도에 대한 소고 2018.11 허경선, 공공기관 임원선임제도의 발전방향, 2013

2024-04-24

[김형석의 100년 산책] 종교에 관한 세 철학도의 대화

두 제자와 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이군이 질문을 꺼냈다.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목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라고. 내가 옆자리의 박군에게 “군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교회에 열심히 참석하는 박군이 “저는 하느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얘기를 들은 이군이 “저는 교회에 나갈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저런 얘기를 들으면 반감을 갖게 됩니다. 인간의 목적이 있으면 인간에게 있고 없으면 없지, 존재 여부도 모르는 신(神)에게 있다는 사고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반박했다. 죽음이란 절망 극복하려는 바람 태어날 때부터 인간 삶의 본성 그 가능성에 신앙의 문 두드려 인류 파국 향해간다는 회의 존재 예수의 가르침, 세계사 바꿔놓아 신앙 통해 역사에 희망 갖게 돼 내 대답이 어려워졌다. “나도 이군과 같은 사상으로 철학 공부도 했고 또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고 믿었다. 그것이 철학과 인문학의 책임이면서 사명이니까. 이군의 사상적 자세는 타당하다고 믿는다. 인류의 스승인 공자나 석가도 그렇게 가르쳤으니까. 인간은 인간의 한계와 운명을 배제하거나 극복할 수는 없으니까”라고 했다.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한계 박군의 질문이다. “그렇다면 옛날부터 현재까지 종교는 필요 없었을 텐데, 많은 사람이 왜 종교를 믿습니까.” 내가 신앙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나는 철학 공부를 할 때 인문학도의 한 사람으로 출발했다. 인간은 인간이다. 그 인간의 본질 속에 인간다움을 완성시키는 의무가 있는데, 육체와 시간 속에 사는 나를 정신과 영원을 찾아 완성시키려는 본성을 갖고 태어났다. 인간의 인간다운 본성을 이성과 양심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성적 사고와 양심적 가치를 추구하다 보면 어떤 한계와 종말에 부닥친다. 삶을 위하고 사랑할수록 마주하게 되는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인간적 삶의 한계와 종말 의식이다. 정신적 삶을 삼켜버리는 절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죽음에 이르는 절망을 극복하고 싶다는 바람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인간적 삶의 본성이다. 그 희망과 가능성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 종교적 신앙의 문을 두드리게 되는 것이 철학과 인문학도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종교적 신앙은 그런 사람에게 주어지는 궁극적인 희망의 가능성이었을 것이고…. 인간과 상관없는 신앙 있을 수 없어 이군의 질문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사회적 존재이고 긴 세월의 역사가 해결지어 줄 과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그런데 인구가 많아질수록 인류의 문제는 해결되기보다 더 해결지을 수 없는 과제를 증폭시켜 왔을 뿐이다. 역사가 길어지면 문화의 축적이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해 왔는데 지금에 와서는 더 큰 비극과 절망을 안겨 줄 뿐이다. 과학의 발달은 해결의 가능성과 더불어 해결짓기 어려운 문제들을 증대하고 있다. 핵무기의 개발과 발전은 인류의 존폐 문제까지 유발하고 있다. 사회문제는 개인을 피곤하게 만들었고 역사적 희망은 더 큰 절망과 연결되어 간다. 그러니까 인간에 인간을 더해가는 사회나 역사적 시간은 희망을 탄생시키기보다는 혁명과 전쟁을 거치면서 파국으로 향해간다는 회의가 커져가고 있다. 말하자면 믿고 따라야 할 진리와 영혼과 정신적 안식처를 스스로 파괴해 가는 잘못을 범하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신의 존재나 계시가 필수적이고 종교는 그 해결을 위해 필요했고 태어났다는 뜻입니까?” 박군의 질문이다. “그렇다고 인간과 상관이 없는 신이나 신앙은 있을 수 없다. 세계사 속에 나타난 유신론을 인격적 실재(實在)로 믿는 종교가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어 온 유대교가 그것이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구약은 역사적 종교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자연신이나 철학적 관념의 신이 아닌 역사 신앙의 모체와 발전이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구약적 신앙이 예수를 통해 신약적 신앙으로 탄생되었다. 후에는 마호메트의 교훈으로 전개되면서 지금의 이슬람 신앙이 된 것이다. 우리가 공자의 가르침을 윤리와 도덕으로 받아들이고 석가의 교훈을 철학적 법과 진리로 따르는 것은 신의 존재가 뒷받침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약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은 유대교를 믿으나, 신약을 받아들인 신앙이 오늘의 기독교가 된 것이다. 지금 이군은 그 신앙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나 박군은 그 신앙을 믿는다고 고백한 것이다. 이군은 철학이나 인문학도가 되었기 때문이고 박군은 그 이상의 것을 믿는다고 보아 좋을 것이다.” 신앙을 갖는 것은 인생 최고의 선택 이군이 다시 질문을 꺼냈다. “저도 그런 신이나 가르침이 있다면 믿겠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없는 신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내 대답을 기다리는 자세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기독교적 신앙의 과제가 있다면 성경 특히 신약을 통해 예수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남겨 주었는가, 찾아보는 일이다. 예수의 교훈에 따라 그렇게 살겠다는 선택이 신앙의 시발이다. 그의 교훈이 내 인생의 진리가 될 수 있고 그대로 따르겠다는 선택을 하고 체험하는 결단이 따라야 한다. 그 신앙적 체험이 내 삶의 중심과 주체가 될 때 신앙인이 된다. 인생의 목적이 새로 나타나며 무엇이 소중한가를 묻는 가치관이 확실해질 때 우리는 신앙의 문을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와 같은 인생의 목적과 삶의 가치관을 갖게 돼 신앙의 공동체가 되었을 때, 사회와 역사의 목표와 방법이 새로워진 것이 지금의 역사적 현실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철학자 사도 바울이었다. 로마 법정에서 예수와 그의 교훈을 전해 들은 법관은 죽었던 사람이 어떻게 부활하느냐고 바울을 정신병자로 취급했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이 로마를 비롯한 세계 역사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으리라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못했다. 그런 신앙적 체험을 한 사람은 자연법칙과 질서를 바꾸는 것이 아니고 정신적 가치와 질서의 존귀성을 믿으면서도 신앙적 가치와 은총의 질서를 체험하게 된다. 인간의 영구한 가치와 역사의 무궁한 희망을 간직하면서 현재의 생활을 영위해 가게 된다. 그 이상의 진리를 찾아 누릴 수 없는 사람이 신앙을 갖는 것은 인생 최고의 선택이 되지 않을까….” 대화를 끝낸 우리 셋은 침묵 속에서 자기 반성을 하면서 자리를 떠났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20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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