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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안드로메다은하

우리 우주에 산재한 은하의 수는 약 1~2조 개 정도 될 것으로 추측한다. 우리 태양이 속한 은하수 은하는 그 지름이 약 10만 광년쯤 된다니 은하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빛이 10만 년 걸리는 크기다. 참고로 빛은 1초에 약 30만km를 이동하는데 지구 주위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도는 속도다. 태양 표면을 떠난 빛은 우리가 사는 지구에 도착하는데 8분 19초 걸린다.     밤하늘을 쳐다보면 무수히 많은 별 사이로 마치 별처럼 빛을 내는 것이 또 있는데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은하 중 하나인 안드로메다은하다. 밝기로 따져서 3등급 별 정도 되는 안드로메다은하 안에는 약 8천억 개 정도의 별이 있으며 크기도 우리 은하의 두 배 정도 된다고 한다.     달에 첫발을 딛고 이제 화성으로 눈을 돌린 인류는 현재 기술로 태양계를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 1호가 거의 50년 동안 우주 공간을 날아서 겨우 지금 막 태양을 빠져나가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가 사는 별인 태양을 벗어나는 데도 반세기가 걸렸는데 태양에서 제일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지금 막 태양을 떠난 보이저 1호가 수만 년을 더 날아야 그 별에 도착한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별을 예로 들어도 수만 년이 걸린다는데 은하수 은하에는 그런 별이 무려 4천억 개나 있다.   인류가 지구 밖의 천체인 달에 갔던 것은 실로 대단한 도약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제는 지구의 형제 행성인 화성에 가려고 하는데 현재 기술로 가는 데만 7달 걸리는 것이 문제다. 달은 지구와 아주 가까워서 달에 가는 데 3일 걸렸다. 그런데 화성은 태양계 안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이기는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것이 아직은 쉽지 않다. 물론 무인 우주선이 화성에 갔고, 화성 표면에 탐사 로버가 굴러다니고 있고, 드론이 화성 대기를 헤치며 날았지만, 사람이 화성에 가는 것은 아직 요원하다. 화성 표면에는 숨 쉴 수 있는 공기도 없고, 온도도 생명체 존재에 너무 춥거나 덥고, 자기장이 없어서 해로운 방사성 피폭이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미래 어느 날 과학 기술이 훨씬 더 발달하여 화성에 식민지 건설을 하는 등 쉽게 왕래할 수 있게 되겠지만, 우리 별인 태양을 떠나 다른 별에 가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 별까지 가는 데 수만 년이 걸린다고 했다. 만약 빛의 속도로 나는 우주선을 만든다고 해도 4년 4개월 걸린다. 설사 다른 방식의 이동 수단이 발명돼서 우리 은하 내부의 4천억 개나 되는 별에는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해도 우리 은하 바깥 외부 은하까지 넘보는 것은 무리다. 우리 은하에서 가장 가까운 안드로메다은하까지도 빛의 속도로 250만 년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드로메다은하와 우리 은하는 중력에 의해 서로 끌려서 40억 년 후에는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그때는 태양도 수를 다해 적색거성이 돼서 지구는 불덩어리가 될 것이므로 인류는 종말을 맞든지 아니면 목성이나 토성의 위성, 혹은 아예 외계 행성으로 이주해야 한다. 그때쯤 우리의 후손은 은하수와 안드로메다가 합쳐진 새 은하 밀코메다에서 살지도 모른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안드로메다은하 은하수 한쪽 은하수 은하 화성 표면

2024-11-22

[사설] 대학이 달라져야 나라가 산다

━ 31회 중앙일보 대학평가, 최상위권 격차 촘촘해져 ━ 국민대 융복합, 아주대·광운대 연구 동기 부여 눈길 ━ 학부모·기업 34% “대학 절반 줄여야”…변화해야 생존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다. 기업과 산업은 물론이고 창작과 문화, 정치와 전쟁의 양상마저 바뀌고 있다. 엔비디아와 인텔의 대조적 모습에서 보듯 이 경쟁의 성패는 생존 문제로 직결된다. 대학과 교육 역시 이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특히 대학은 기술의 선도적 개발과 함께 미래 인재 양성이라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해 세계 유수의 대학들은 변화하고 혁신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이번 주 발표된 중앙일보 대학평가의 결과에서도 이런 흐름이 감지됐다. 그간 우수 자원을 뽑는 데만 관심을 기울일 뿐, 선발 이후에는 손을 놓았던 대학 풍토는 중앙일보 대학평가가 지핀 경쟁과 혁신의 분위기를 타고 바뀌어 왔다. 31회째를 맞는 2024년 평가에서도 달라진 대학들의 모습이 결과에 반영됐다. 그 키워드는 융복합과 국제화, 학생과 연구 환경에 대한 투자로 집약된다. 우선 최상위 5개 대학의 점수 격차가 현격히 줄어 간격이 촘촘해진 점이 눈에 띈다. 특히 연세대는 1위 서울대를 불과 1점 차로 바짝 추격했다. 외국대학과의 학점 교류 비율, 외국인 학생 비율 등 국제화 관련 지표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보여준 결과다. 입시에서 우수한 학생을 독차지한 서울대가 학생 관련 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점을 고려할 때 연세대의 이런 성과는 앞으로 더 큰 변화를 이끌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줄곧 앞섰던 한양대를 제치고 4위에 오른 고려대나, 2019년 이후 5년 만에 10위권(8위)에 다시 진입한 서강대 등 최상위권 대학들도 변화와 발전을 위한 노력에 따라 순위가 급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순수 학문의 중심이던 수학과를 암호 수학 분야로 특성화해 K방산 분야 연구용역을 석권한 국민대는 융합·실용 학문의 위력을 톡톡히 보여줬다. 격려금이나 차량 지급, 강의시간 감축 등의 동기부여로 교수들의 연구 성과를 현격히 끌어올린 아주대·광운대의 사례도 눈에 띈다. 학사경고를 받은 학생에게 공부하는 좋은 습관을 코칭해주는 시스템을 운영해 학생 이탈률을 크게 낮춘(3위) 인하대의 사례도 신선하다. 하지만 우리 대학이 마주한 엄혹한 현실도 분명히 드러났다. 의대 광풍 속에서 수도권 이공계 대학이 고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나마 처음으로 4개 과학기술특성화대학(POSTECH· KAIST·UNIST·GIST)가 이공계 별도 평가에서 모두 10위권에 진입한 점이 고무적이다. 반면 지역 사립대학은 물론이고, 경북대를 제외한 지역거점 국립대조차 모두 2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결과는 지역 대학 경쟁력의 현주소를 여실히 반영하는 씁쓸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계속된 지원에도 이런 결과가 나오는 이유와 그 해법에 대해서는 대학 사회뿐만 아니라 정부 당국도 깊이 성찰하고 고민해야 한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탓에 대학들은 생존을 걱정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이번 평가에서 학생과 학부모, 기업 인사담당자 24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적정 대학 수가 150개 이하라는 답이 74%나 나왔다. 절반 이하로 줄이자는 답도 35%였다. 대학 평가는 단순한 줄세우기가 아니라 대학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변해야 생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향 제시다. 상위권 대학은 그들 나름대로, 성과가 부진한 대학도 상황에 맞게 자신들의 강점은 살리고, 부족한 점은 보완해야 엄혹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게 건강해진 대학이 배출한 인재만이 시대를 선도하고 사회를 이끈다.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도 이에 달렸다. 대학이 달라져야 나라가 산다.

2024-11-22

"역사를 잃은 사람들"의 역사는 어디에? [김기협의 남양사(南洋史) <33>]

에릭 울프(1923-1999)의 〈유럽과 역사를 잃은 사람들〉을 읽고 있다. 1982년에 나온 책인데 2010년에 재판이 나왔다. 노르웨이 인류학자 토마스 에릭센(1962- )은 재판 서문에 “21세기를 위한 책”이란 제목을 붙였다. “역사를 잃은 사람들”의 역사는 아직도 역사학자보다 인류학자들의 관심 대상이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도 중요한 화두로 자라나 왔다. 울프가 고찰의 시점으로 잡은 1400년 이후 유럽인만을 역사의 주체로 보아 온 역사관이 한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유럽인의 역사 전개에 객체로만 인식되던 비-유럽인의 주체적 역할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역사를 잃은 사람들”. 남양사 고찰에서도 중요한 초점의 하나다. 근대 이전의 역사 기록이 빈약한 데다 근대 들어서는 침략과 정복의 대상이 되어 역사 전개에서 주체적 역할을 인정받지 못한 지역이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인류사의 전개에서 맡는 역할이 커지고 있고, 그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에서도 그 주체적 역할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 정치적 무기로서 역사학의 진화 어느 사회도 자기 역사를 되새김하는 나름의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이 메커니즘의 진화 과정을 나는 〈밖에서 본 한국사〉(2008)에 이렇게 그렸다. "역사 서술은 인류 문명 초창기부터 정치적 의미를 가진 활동이었다.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에도 과거사의 기억은 주술사의 푸닥거리에 담겨 있었다. 한 부족이 공유하는 과거의 기억은 푸닥거리를 통해 부족 정체성의 바탕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주술사가 발휘하는 영도력이 제정일치 체제의 근거였다." 문자 발생 후 역사 서술은 지배계층의 교양이 되었다. 정보의 대량 축적이 가능하게 되면서 푸닥거리 단계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사회가 역사를 공유하며 정체성을 함께하게 되었다. 문자를 향유하던 지배계층은 역사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위상과 소명을 확인했다. 인쇄술 발전으로 정보의 축적만이 아니라 유통까지 대형화된 단계에서 근대역사학이 나타났다. 피지배층까지 문자를 향유하게 되면서 국민 통제수단으로 국민교육이 개발되고 역사교육이 그 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역사교육의 내용을 확보하고 담당자를 양성하기 위해 직업적 역사학자들이 대학에 자리 잡고 분과학문으로서 근대역사학을 키워냈다. 근대역사학은 종전보다 정치적 무기로서의 기능을 더욱 강화했다. 민족과 문명들 사이의 접촉이 늘어난 상황 때문이었다. 국민국가들은 국민에게 민족의 영광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역사’를 경쟁적으로 개발했고, 이 경쟁에 ‘과학성’이 동원되었다. (10-11쪽) ━ 외부 권력의 지배를 위한 역사의 파괴 울프가 고찰의 기점으로 잡은 1400년은 유럽의 팽창 직전이다. 그러니 그가 살피는 것은 유럽 밖의 사람들이 역사를 잃은 ‘상태’보다 역사를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자를 안 가진 사회도 푸닥거리의 형태로든 설화의 형태로든 자기네 역사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밖에서 온 사람들이 가져온 역사보다 정치적 무기로서의 힘이 약한 형태였다. 활과 창이 대포 앞에서 무력한 것처럼 전승되어 온 역사는 유럽인이 가져온 근대역사학 앞에 뭉개져 버렸다. 역사의 파괴는 근대 식민 사업의 한 중요한 부문이었다. 강력한 무기로 피정복민의 행동을 규제하는 한편 강력한 역사관으로 그들의 정체성 의식을 봉쇄한 것이다. “식민(植民, colonization)”이란 번역어가 정확하지 못한 문제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colony”의 어원인 로마의 “colonia”는 문자 그대로 “사람 심기”의 뜻에 가까운 현상이었다. 그러나 근대의 식민지는 아메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이주민 중심의 사회를 건설한 경우보다 현지민 사회를 외부 권력이 지배한 경우가 더 많았다. 외부 권력의 현지민 사회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의 파괴가 필요했다. 현지민 사회의 진로를 좌우할 현지 역사의 역할을 부정하고 밖에서 유입된 흐름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한국에 적용한 ‘식민사관’도 이런 목적이었다. ━ 인류학의 발전은 학술사상 획기적 현상 초기의 정복자들은 피정복자를 역사를 가지지 않은, 즉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폭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배의 효율화를 위해서도 지배 대상에 대한 심층적 이해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민족지(民族誌, ethnography)가 형성되었다. “-logy” 아닌 “-graphy”라는 말은 민족지가 본격적 학문으로 인정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민족’의 의미의 체계적 해명이 아니라 개별적 현상을 묘사하는 작업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 발전에 따라 18세기 말부터는 민족학(ethnology)이란 말이 쓰이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인류학(anthropology)의 발전은 진화론의 출현에 자극받은 것이었다. 민족지나 민족학이 고찰해 온 대상을 보다 과학적으로 해명하려는 의욕이 크게 일어났다. 초기에는 자연과학에 주로 의지하는 형질인류학(physical anthropology)이 위주였으나 20세기를 지나는 동안 문화인류학과 사회인류학이 주류가 되었다. 20세기 후반 인류학의 폭발적 발전은 학술의 역사에서 획기적 현상이다. 19세기 학술의 분과화(分科化)를 재조정하는 방향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연구 대상의 범위에 따라 설정되는 다른 학술 분야와 달리 인류학은 연구 방법의 종합성으로 판별되는 것이다. 인류학이 “인문학 중 가장 과학적인 분야이며 사회과학 중 가장 인문적인 분야”라는 울프의 설명도 이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근년에는 ‘역사인류학(historical anthropology)’이란 영역을 많이 이야기한다. 새로운 세계관과 새로운 연구방법을 통한 역사 연구가 활발하게 펼쳐지기 시작했으나 아직 역사학계에서 제도화되지 못한 단계로 볼 수 있다. 내가 남양사 정리를 위해 참고하는 연구서 대부분이 이 영역에서 나온 것이다. ━ 생산양식과 정치체제 사이의 관계는? 〈유럽과 역사를 잃은 사람들〉을 역사서로 보기에는 사실 파악이 무척 허술하다. 이 책의 가치는 사실을 밝히는 데보다 사실을 바라보는 방법을 점검하는 데 있다. 울프 자신도 1997년 재판 서문에서 책의 목적이 역사의 서술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들을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들 사이의 상호 작용과 상호 의존 관계를 통해 형상화”할 필요를 밝히는 데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상호 작용과 상호 의존)를 보는 시각으로 울프는 ‘생산양식’을 제시한다. 친족 관계(kin-ordered), 조공 관계(tributary)와 자본주의의 세 가지다. 친족 관계 생산양식은 외부의 압력이 약한 상태에서 작동한다. 조공 관계는 외부의 힘이 강할 때 강요된다. 외부의 힘이 더 강해지면 내부의 생산구조를 바꾸면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성립한다. 울프의 생산양식론이 마르크시즘과 다른 점은 생산양식의 필연적 진화 과정을 부정하는 데 있다. 외부의 힘이 약해지면 조공 관계에서 친족 관계로 돌아갈 수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에서 다른 생산양식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 책이 나온 40년 전에 비해 불확실성이 늘어난 지금 상황에서 음미할 필요가 더 커진 관점이다. 생산양식과 직결되는 문제가 정치체제다. 우리에게 익숙한 국가 개념은 조공 관계 생산양식을 발판으로 이뤄진 것이다. 정치적 무기로서 역사의 역할은 국가를 배경으로 자라난 것이다. 지금 세계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강화에 따라 국가의 역할이 퇴화하고 있다. 다음 단계에서 세계는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 갈까? 역사의 흐름을 무한한 진보의 길로 보는 ‘진보사관’이 근대세계에 유행했으나 20세기를 지나는 동안 힘을 잃었다. 그렇다고 끝없는 순환의 과정으로 보는 ‘순환사관’이 힘을 되찾을 것 같지도 않다. 울프의 책이 이 문제에 결론을 내려주지는 않지만, 이 문제와 관련된 생각의 범위를 넓혀준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에릭센이 “21세기를 위한 책”이라 한 것이다. 김기협(orunk@naver.com)

2024-11-22

[우리말 바루기] ‘아니요’가 아니오?

한 문장의 끝을 맺는 자리에는 종결어미 ‘-오’가 와야 한다. ‘아니오’는 형용사 ‘아니다’의 어간에 설명·의문·명령의 뜻을 나타내는 종결어미 ‘-오’가 결합한 말이다. “내 알 바 아니오” “마땅히 우리가 할 일이 아니오”와 같이 한 문장의 서술어로만 사용한다. 같은 이유에서 “제발 도와주십시요” “이제 그만하십시요”로 쓸 수 없다. ‘도와주십시오’ ‘그만하십시오’로 고쳐야 된다.   앞말과 뒷말을 이어 줄 때는 ‘아니오’가 아닌 ‘아니요’가 온다. “그들은 부부가 아니요, 동지랍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닙니다” 등처럼 사용한다. ‘아니다’의 어간에 어떤 사물이나 사실 따위를 열거할 때 쓰이는 연결어미 ‘-요’가 붙은 형태다. 문장이 마무리된 것이 아니므로 ‘아니오’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어떤 질문에 부정하는 대답을 할 때도 ‘아니오’와 ‘아니요’의 표기를 많이 혼동한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예, 아니오’로만 답하시오”와 같이 쓸 수 없다. ‘예, 아니요’라고 해야 올바르다. ‘예’ 또는 ‘네’와 상대되는 말은 ‘아니요’다. 이때의 ‘요’는 연결어미가 아니다. 감탄사 ‘아니’와 높임의 의미를 더하는 보조사 ‘요’가 결합된 구조다. 감탄사에 종결어미 ‘-오’는 붙을 수 없다. 답하는 말로 ‘아니오’를 사용하는 것은 어법에 어긋난다. 우리말 바루기

2024-11-21

[이 아침에] 젊은 엄마의 초상

젊은 엄마를 기억한다. 나는 아마 다섯 살, 엄마는 스물다섯.  신작로, 늘 흙바람이 아지랑이처럼 스멀거리는 곳. 공주에서 올라오는 버스가 멀리서 콩알만 하게 나타났다.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관방 차부 앞. 다른 한 손에는 눈깔사탕 두 알.     새벽부터 조짐이 이상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채 실눈을 뜨니 엄마가 내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안아주었다. 다른 날보다 더 꼭꼭. 차부에 가서 사탕을 사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혹해서 그런 일이 전에 없었던 일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엄마 손을 잡고 집을 나왔다. 우리 집 식구 모두 따라나섰다. 할아버지만 빼놓고. 할아버지는 엄마와 내가 싸리문을 나설 때도 안방 문을 빼꼼히 연 채 헛기침만 하셨다. 작은아버지 그리고 새색시 작은 엄마도 따라나섰다. 바로 아랫집에 사시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이모도 같이 나섰다.   우리 동네 삼바실에서 관방까지는 외길, 겨우 소달구지 하나가 다닐만한 좁은 길이었다. 아랫말 끝자락 동네 고사 지내는 모새독고리를 지나, 행상집, 서낭당, 애장터를 지나면 학교가 보이고 곧 관방. 어린애 걸음으로도 이십 분도 안 걸리는 길이었지만, 한 번도 혼자 와본 적은 없었다.     서낭당을 지나며 엄마가 돌을 하나 주워 이미 내 허리 높이의 돌무더기에 올려놓았다. 외할머니는 작은 소리로 “관세음보살”늘 부르셨다. 우리 식구는 원래 별말이 없었다. 그날도 그랬다. 신작로 가에 옹기종기 서 있는 그들의 숨소리에 하얀 김이 서린다.  겨울이었던 듯. 멀리서 보이던 버스가 갑자기 다가온다. 스르륵 차가 멈춘다. 차 문이 열린다. 차부라는 말이 버스 정류장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는다.   엄마가 손을 놓는다. “엄마,” 내가 자지러지게 소리친다. 엄마는 차에 오르며 나를 살짝 민다. 뒤에서 이모가 나를 받아 안는다. 둘이서 오랫동안 연습을 한 듯.  차가 부르릉 떠나버린다.     나는 발버둥 치며 이모의 품을 벗어난다. “엄마아 ~~” 울며불며 차가 가버린 북쪽으로 뛰어간다. 버스는 이미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버스 뒷바퀴에서 잔돌들이 튕겨 나왔다.   엄마는 일 년 후에 돌아오셨다. 시골에서 볼 수 없었던 멋진 세일러복 한 벌이 엄마의 선물이었다. 그 옷보다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은 것은 엄마의 사진 한장. 유리문이 달린 부엌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흑백 사진.  20대 어린 엄마의 얼굴은 그 사진 속의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엄마의 서울살이는 식모살이였다. 아무도 내게 직접 말을 해주지 않았지만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 조각을 맞추어 보고 내가 철이 든 다음에 깨달았다. 그때 엄마가 벌어온 그 돈은 그 후 우리 집의 경제적 기반의 원천이 되었다.     거의 70년 전 일이었다. 90이 넘은 엄마의 기력과 기억이 소실점을 향해 빠르게 흘러간다. 평생을 외아들로 살아온 나에게 엄마는 “어제 네 형은 왔다 갔어”하고 말한다. 첫돌을 넘기지 못하고 애장터에 뭍인 첫아들이 멀쩡하게 장성하여 살아있다고 착각하시는지.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엄마 초상 그때 엄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버스 뒷바퀴

2024-11-21

[문화산책] 아빠, 오빠, 자기야

‘오빠’라는 낱말이 한동안 한국 정치판을 뜨겁게 달구었다. 논쟁의 핵심은 오빠라는 호칭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냐, 친오빠냐 남편이냐 하는 것이었는데, 이러쿵저러쿵 시끄러웠다. 우리말에 부부 사이의 호칭이 참으로 애매하고 느슨해서 생긴 희비극이었다.   지난 시절에는 남편을 ‘아빠’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 한동안 유행했었는데, 이는 자신의 친정아버지를 부르는 것인지 남편을 부르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일본식 어법으로 알려진 말이므로 절대로 써서는 안 된다고 우리말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아빠’가 ‘자기’를 거쳐 ‘오빠’로 진화(?)한 모양이다. 요새 젊은 아내들 사이에는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연애 시절에 부르던 호칭을 결혼 후에도 그냥 자연스럽게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단호하게 말해서, 아빠건 오빠건 그건 명백한 ‘근친상간’이다. 그러니까,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는 세상이 된 셈이다.   보통은 ‘여보’, ‘당신’이 일반적 호칭이지만, 어쩐 일인지 안 쓰는 부부가 많은 모양이다. 특히, 신혼의 젊은 부부들은 매우 어색하게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개 씨, 아무개 아빠, 저기요, 이봐요, 나 좀 봐요 등으로 얼버무린다.   남편을 부르는 가장 보편적인 호칭어가 ‘여보’인데, 이 말이 부부간의 호칭어로 정착된 것은 뜻밖에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20세기 초, 중반에도 그리 보편적이지 않았다.   한편, ‘오빠’라는 호칭은 조용필, 나훈아, 남진 같은 가수들을 열광적으로 따르는 ‘오빠부대’에서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지금을 K-팝 열풍 덕에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국제어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편이 오빠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연스럽게 알맞은 호칭을 찾았으면 좋겠다. 이에 대해 우리말 전문가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궁금해서, 전문가가 권하는 표준안 하나를 예로 살펴본다. (출처: 한국다문화사회연구소)   남편을 부르는 호칭 △신혼 초- 여보, ○○씨, 여봐요 △자녀가 있을 때- 여보, ○○ 아버지, ○○아빠 △장년, 노년- 여보, 영감, ○○할아버지   아내를 부르는 호칭 △신혼 초- 여보, ○○씨, 여봐요 △자녀가 있을 때- 여보, ○○엄마, ○○어머니 △장년, 노년- 여보, 임자, ○○엄마, ○○할머니   아무튼, 흔히 쓰는 자기, 오빠, 아저씨 등은 안 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주장이다. 말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보태자면, 자기 아내를 ‘와이프’라고 부르는 것을 흔히 보는데, 이런 호칭도 어딘가 어색하다.   이런 식의 문제에 부딪힐 때면 떠오르는 것이 우리말을 지극히 사랑한 선구자들이다. 백기완, 이어령, 소설가 김동성 같은 분들….   이어령 선생은 자신이 이룬 숱한 업적 중에서 가장 보람있게 여기는 일로 ‘갓길’이라는 낱말을 정착시킨 것을 꼽은 바 있다. 백기완 선생의 우리말 사랑은 참으로 지극하여, 글을 쓰고 말을 할 때도 한자어와 영어, 일본어 같은 외래 어휘를 삼가고 달동네, 새내기, 동아리, 모꼬지 등의 순우리말을 살려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우리말 사랑은 김지하, 김민기, 전인권 등 많은 문화예술인에게 영감과 자극을 주었다.   우리 한글은 매우 과학적이어서 배우기 쉽다고 하는데, 사실은 깊이 들어갈수록 정말 어렵고 속 깊은 언어다. 호칭이나 존댓말 등도 그렇다. 잘 찾아보면, 부부간의 호칭도 아름답고 정겨운 순우리말이 있을 것 같은데….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아빠 오빠 아빠 오빠 아무개 아빠 우리말 전문가들

2024-11-21

[뉴스 포커스] 기업인과 정치인

“일자리의 안전성이라는 면에서만 보면 로컬 정부보다 연방정부 공무원이 더 취약하다고 볼 수 있죠. 정치 바람을 탈 가능성이 가장 높잖아요.”   공무원 생활을 했던 한 지인이 오래전 농담처럼 했던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아마도 연방정부 공무원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듯하다. 대규모 감원 조치가 예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대 75% 감원설도 들린다. 연방정부 공무원이 220만여 명이니 160만여 명은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당장 연방정부 공무원 노조가 반대 성명을 내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다.       감원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곳은 ‘정부효율부(DOGE)’다. 트럼프 당선인이 2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의욕적으로 만든 기관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비벡 라마스와미가 공동 수장이다. 공식 명칭이 ‘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라 ‘정부효율부’로 불리지만 자문기구라 머스크와 라마스와미는 의회 인준이 필요 없다.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려지던 DOGE의 활동 방향성이 드디어 공개됐다. 머스크와 라마스와미 공동 명의의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을 통해서다. 핵심은 각종 규제를 없애고, 행정부를 축소하고, 비용을 줄이겠다는 3가지 내용이다. 비대한 연방정부 조직의 군살을 빼고 관료 집단의 권한 행사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규제를 없애면 이를 집행하던 공무원이 필요 없어지고, 정부 조직과 인력을 줄이면 비용도 아낄 수 있다는 논리다.     사실 연방정부의 비효율성은 자주 논란이 됐던 이슈다. 과도한 규제와 업무 중복 인력 과잉이 문제라는 지적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연방정부의 효율성 제고 정책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속도와 범위다. 개혁 작업이라는 게 신속하고 대대적으로 이뤄져야 효과적이긴 하지만 대상이 정부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특히 몇몇 기관이 아니라 지금처럼 아예 연방정부 조직의 밑그림을 다시 그리겠다는 입장이면 더 신중히 해야 한다. 모든 국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섣부른 개혁이 이뤄지면 국민은 오히려 피곤해진다.     당장 WSJ 기고문에 언급된 몇몇 사안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메이케어와 메디케이드 프로그램의 개혁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대상자가 수천만 명에 달하는  방대한 국민건강 프로그램이다. 올바른 개혁을 위해서는 상당한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DOGE는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사기와 남용 행위 근절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하지만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 든다. 스스로 밝힌 DOGE의 활동 시한이 2026년 7월까지이기 때문이다.         머스크와 라마스와미는 기업인들이다. 기업인의 최고 가치는 효율적인 경영을 통한 기업 수익의 극대화다. ‘남는 거래냐’ ‘밑지는 거래냐’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머스크는 특히 이런 기업인의 논리에 충실한 인물이다. 소셜미디어인 X(트위터) 인수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직원 80% 해고 조치였던 것도 그 사례 가운데 하나다. 직원 숫자를 줄이면 기업의 수익성은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의 파트너인 라마스와미 역시 투자 대비 수익률을 최우선시하는 인물이다. 헤지 펀드사 출신인 그가 바이오테크 기업을 창업한 것도,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하는 일은 정치인의 영역에 해당한다. 국민의 삶과 연결된 정부 조직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판단 기준은 수익성이나 효율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이 최고 가치로 여겨야 할 것은 국민의 삶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다.     머스크와 라마스와미의 개혁 작업이 칼춤이 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기업인 정치인 연방정부 공무원들 연방정부 조직 사실 연방정부

2024-11-21

[커뮤니티 액션] 트럼프 당선과 아시안 단체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뒤 미국 곳곳의 아시안 단체들은 성명을 발표했다.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특히 아시안 아메리칸, 이민자,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재도 소외되고 차별받는 우리 사회 여러 커뮤니티에 큰 긴장감이 일고 있다”며 “이들은 이전 트럼프 행정부 아래서도 적대감과 해악의 무게를 감당했던 커뮤니티”라고 밝혔다.   아시안아메리칸정의향상협회는 “트럼프가 선거운동 기간 중 보여준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발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는 아시안과 이민자 커뮤니티를 지키고 증오와 차별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시안아메리칸법류교육재단은 “트럼프의 재등장은 아시안 아메리칸의 민권과 안전에 위협을 가한다”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우리 커뮤니티를 지킬 것”이라고 했다.   주요 아시안 단체들이 한결같이 우려를 밝히고 커뮤니티를 지키겠다고 나섰다. 이들은 아시안 커뮤니티에 봉사하며 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귀가 열려 있는 까닭이다.   민권센터에도 수많은 한인이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자신은 쫓겨나도 괜찮지만 미국에서 자란 서류미비 청년 추방유예(DACA) 신분의 자녀들이 추방되면 큰일이라며 한숨짓는 어머니, 서류미비 배우자의 영주권 신청을 했는데 이제 모두 물거품이 됐다고 한탄하는 남편, 오래전 추방령을 받고도 그냥 버텼는데 이제는 이사라도 가야 할 것 같다는 여성 등.   NAKASEC은 지난주 전국 대책 회의를 열었다. 뉴욕과 뉴저지 민권센터, 버지니아 함께센터, 펜실베이니아 우리센터, 일리노이 하나센터, 텍사스 우리훈또스 등 지역단체 대표 50여 명이 모여 의견을 나눴다. 회의 중 여러 차례 침묵이 흐르고, 눈시울이 젖고,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트럼프가 공약한 대규모 이민자 추방에 맞서 우리 커뮤니티를 어떻게 지켜야 할 지 막막했던 탓이었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핫라인 설치, 권리 안내서 발간, 여러 대책위 구성 등에 힘을 모으기로 결의했다.   NAKASEC은 성명에서도 “우리는 변함없이 헌신적으로 아시안 아메리칸과 이민자들의 권리와 존엄을 지키고 안전을 도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닥칠 힘든 시간에도 항상 여러분의 곁에 함께 있을 것”이라고 커뮤니티에 약속했다.   민권센터 존 박 사무총장도 “우리 단체는 바로 이런 때를 위해 존재한다”며 “이런 때에 맞서기 위한 기반을 구축해왔기에 끊임없는 헌신으로 이 도전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민권센터와 NAKASEC은 곧 ‘이민자 보호 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다. 추방에 처한 한인들의 법률 지원과 가족을 위한 지원 등을 위해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첫 임기에 이민자 150만 명을 추방했다. 이 가운데 한인도 1295명이 쫓겨났다.   이번에는 그 규모가 더 커질 전망이다. 구금 시설을 두 배로 만들고, 추방 건수를 10배까지 늘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리고 이민자 추방에 군대까지 동원하겠다고 여러 차례 선언했다. 2000만 명을 추방하겠다는 트럼프의 계획은 비용 문제가 걸림돌이다. 많게는 9679억 달러가 들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여하튼 앞으로 4년간 트럼프와 아시안, 이민자 커뮤니티의 대결이 펼쳐진다. 김갑송 / 민권센터·미주한인평화재단 국장커뮤니티 액션 트럼프 아시안 아시안 커뮤니티 아시안 단체들 아시안 아메리칸

2024-11-21

[삶과 믿음] 감사는 표현될 때 완성된다

이 년 전 여름, 살렘고아원 원장 쟌 목사가 식량을 가지러 와서 커다란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쟌 목사가 내민 봉투에는 컬러로 인쇄된 감사장이 들어 있었다. 그동안 불우한 어린이들을 조건 없는 사랑으로 지원해 준 공로를 치하한다는 내용이었다. 고아들을 사랑해 주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어서 고맙다는 뜻을 근사한 디자인의 감사장에 담아 온 것이다. 이 감사장 하나를 만들기 위해 오래된 노트북으로 디자인을 찾아보고, 거기에 맞춰 이름을 넣고, 그 파일을 가지고 컬러 프린트해 주는 곳에 가서 프린트했을 텐데, 짐작에 족히 10달러는 들었을 듯했다. 그 돈이면 웬만한 근로자 이틀 치 일당이 된다.   짐짓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나무라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활짝 웃으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런 돈을 뭐 하러 쓰느냐고, 앞으로는 절대 이런 것을 만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고마움을 알고, 그것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말로만 하지 않고 비록 종이 한 장이지만 정성을 들인 멋진 감사장이 긴장하며 아이티에 가는 우리 마음을 밝게 해주었다.   사랑과 감사는 마음에 품은 것을 겉으로 드러내어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이티 고아들을 사랑하신다고 믿기에, 그 사랑을 전하고 표현하기 위해, 쉬지 않고 고아들을 먹이고 가르치려고 애쓴다. 지금은 미국의 연방항공청이 민간항공기 운항을 중지시켜서 오가지 못하고 있지만, 아이티가 지난 수년간 갱들의 난동 속에 위험하고 슬픈 땅이 되었어도 우리가 쉬지 않고 아이티에 가고, 식량을 공급하고, 학업을 돌보는 것은 오직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렇게 표현된 사랑은 공포와 좌절의 땅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꿈에 버팀목이 되어준다.   마찬가지로 감사도 표현하는 것이다. 살렘고아원 쟌 원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전한 우리의 사랑에 귀한 감사장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가끔 고아원 아이들이 단체로 감사 카드를 만들어서 보내주곤 한다. 아이들이 끙끙거리며 괴발개발 그림을 그리고, 알아보기도 어려운 글씨로 쓴 감사 카드를 받아 들면, 우리는 그 안에 담긴 고마움에 진심으로 감동하고 이 아이들을 돕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자 다짐한다.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다른 이들의 호의나 사랑에 빚지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른 이에게 사랑을 나누고 호의를 베풀고 배려하면서 사는 것처럼 우리 역시 타인의 사랑과 배려 가운데 살아간다. 그 사랑의 빚을 알고 표현하는 것이 감사이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이나 감사는 완성되지 않는다.   다음 주 목요일은 추수감사절이다. 가족들이 모여 한 해 동안의 삶에 대한 감사를 나누는 큰 명절이다. 많은 교회가 이번 주일을 추수 감사 주일로 지킨다. 지난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우리 삶을 돌아보면 감사하지 않은 시간은 없다. 모든 것이 절망과 공포 가운데 있는 아이티에서도 우리는 감사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감사는 표현하는 것이다. 고맙다면 고맙다고 소리내어 말해야 한다.   작은 표현 하나가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이번 감사절에는 우리 삶에 빛을 비춰준 이웃과 가족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그동안 전하지 못한 감사를 표현해 보면 좋겠다. 살아오면서 받은 풍성한 사랑과 호의와 배려에 비해 너무도 부족했던 감사를 정성스레 표현할 때 우리의 사랑과 감사는 관계를 더욱 빛나고 풍성하게 하고 세상은 더욱 환해질 것이다. 조 헨리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감사 표현 감사장 하나 감사 카드 이번 감사절

2024-11-21

[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세금이 복잡한 이유(10) - 마무리

지난 몇달동안 모두 9회에 걸쳐서 소득세가 복잡한 이유들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정리를 해보자. 개인소득세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골격은 딱 세가지다. 소득, 공제 그리고 크레딧(Credit)이다. 1년 동안 벌어들인 수익 중에서 소득세 대상이 안되는 금액들을 먼저 제외시킨다. 그리고 남은 소득에서, 정부가 차감해 주는 금액을 공제받는다. 그리고 남은 과세 소득에 세율을 곱하면 세금이 계산된다. 이렇게 나온 세금에 크레딧을 적용하면, 내야할 세금액 또는 돌려받을 환급액이 정해지는 것이다.       소득세의 대상이 아닌 대표적인 수입은 증여나 상속받은 돈이다. 생명보험금, 다쳐서 받은 상해보험금도 소득세 대상이 아니다. 2년 이상 소유하고 거주한 자신의 집을 팔아서 생긴 이익도 소득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파산을 하면서 변제된 채무도 소득에 포함 시킬 필요가 없고, 은행에 만기 적금을 찾거나, 한국에 있던 자신의 돈을 송금 받은 것처럼 세금을 모두 낸 자기 돈이 위치나 형태만 바뀌는 경우에도 추가 소득이 아니라서 모두 소득에서 “제외”가 된다. 반면에 일을 해서 번 소득이나, 이자나 배당금과 같은 일하지 않고 번 자산소득은 모두 소득세의 대상이 된다.     소득이 결정되었다면 이제 공제를 받아서 과세대상이 되는 소득을 줄여야한다. 개인소득세와 관련해서 중요한 공제가 둘이 있다. 첫 번째 공제는 “사업공제”다. 사업과 관련해서 사용된 지출을 “사업공제”라고 부른다. 두 번째로는 “기본공제와 항목별공제”라는 것이 있다. 납세자는 이 두 가지 중에 한가지만을 선택해서 받는다. 일반적으로 소득이 낮고 주택을 보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기본공제를 받고, 소득이 높고 주택을 보유한 사람들은 항목별 공제를 받을 수가 있다. 기본공제는 상황이 비슷한 납세자들의 경우 일률적으로 일정한 금액을 공제받는다. 반면 항목별 공제는 개인별로 각각 다른 금액을 공제 받는다. 항목별 공제에 포함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주택재산세와 주택융자에 대한 이자금액이다. 그리고 각종 기부금이 항목공제 금액에 추가가 된다. 또한 의료비중에 소득 금액의 7.5%를 넘는 의료비 지출은 항목별 공제금액에 추가가 된다.   크레딧은 납세자가 내야 할 세금을 줄여 주거나, 현금으로 직접 돌려받을 수 있다. 그래서 크레딧은 절세에 미치는 효과가 직접적이며 강력하다. 세금을 줄이고 남으면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크레딧이 Earned Income Tax Credit이다. 2024년 기준으로 최대 $7,830을 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 또한 자녀 한 명당, 부모의 세금을 2,000불까지 줄여주고, 혹시 남으면 1,700불까지는 돈으로 돌려받는 Child Tax Credit 은2024년 기준으로 2008년 1월 1일 이후에 태어난 자녀를 가진 부모가 해당이 된다. 납세자 본인이나 자녀가 대학 이상의 교육기관에 다니는 경우에는 교육비 Credit을 받을 수 있다. 대학 1학년부터 4학년의 자녀를 둔 가정은 연간 2,500불까지 American Opportunity Credit을 받을 수 있고, 이중에서 천불까지는 돈으로 돌려 받을 수도 있다. 대학원생도 신청할 수 있는 Lifetime Learning Credit은 한 가정당 받을 수 있는 크레딧이 2,000불까지인데 이것은 세금을 줄여만 주지 돈으로 환급 받을 수는 없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마무리 세금 항목별 공제금액 모두 소득세 소득 공제

2024-11-21

[사설] ‘그 나물에 그 밥’ 개각으론 민심 수습 어림없다

━ 회전문식 인사론 쇄신 불가능…파격과 혁신 필요 ━ 총리 비롯, 내각·대통령실 다 바꿀 각오로 임하길 윤석열 대통령이 5박8일의 남미 순방을 마치고 어제 귀국했다. 이제는 녹록지 않은 국내 상황을 잘 헤쳐나가는 게 급선무다. 핵심은 인적 쇄신이다. 대통령도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적절한 시기에 인사를 통한 쇄신의 면모를 보여드리기 위해 벌써 인재 풀에 대한 물색과 검증에 들어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그 결과물을 내놓을 때가 됐다. 대통령실은 올 연말이나 내년 초를 개각의 시기로 생각하는 듯하나 굳이 그때까지 미적거릴 이유가 없다. 개각을 통한 국정 동력 확보도 시급하거니와 답답한 현 정국을 바라보는 국민의 갈증이 위험 수위에 달했다. 입각 후보를 놓고 몇몇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총리 후보로는 다선의 여당 중진의원, 호남 출신 원로급 인사 몇 명이 언급된다. 하지만 솔직히 그 정도 인선으로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국민 눈높이에선 ‘그 나물에 그 밥’으로 비친다. 그런 회전문 인사를 할 생각이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야당의 임명동의안 찬성도 현실적으로 고려해야겠지만, 이번 총리 인선의 최우선 포인트는 무난함이 아닌 참신함과 능력이 돼야 한다. 다소 파격적 인물이어도 좋다. 글로벌한 관점에서 ‘트럼프 2기’의 파고를 헤쳐나갈 능력 있는 인물이면 더욱 좋겠다. 야당도 함부로 낙마를 시도했다간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음을 자각하기 바란다. 아울러 이번 개각에선 장수 장관 교체 정도를 넘어 사실상 모든 부처를 대상으로 삼길 바란다. 트럼프 당선인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를 ‘정보효율부’ 수장에 발탁한 것같이 강력한 혁신 아이콘을 선보일 필요가 있다. 대통령실 참모 조직도 과감한 인사를 통해 분위기를 확 바꿔야 한다. 특히 윤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통화 내용에 공천 언급이 있었음에도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상식적으로 아무 문제 될 게 없는 내용”이라고 한 대통령비서실장, 기자의 질문을 “대통령에 대한 무례다. 어린아이에게 부모가 하듯 ‘뭘 잘못했는데’라고 하는 태도였다”고 한 정무수석, 그리고 대통령 부부와 관련해 옹색한 부실 해명만 거듭해 온 홍보 라인은 전원 교체 검토 대상인 게 맞다. 이대로 방치하다간 용산 대통령실이 갈라파고스처럼 국민으로부터 고립된 섬으로 남게 될 것이다. 김건희 여사 라인으로 분류되거나 구설에 오른 인사는 전원 배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 인사청문회 부담 때문에 정말 필요한 인재 대다수가 입각을 고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해는 간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 본인이 삼고초려라도 해서 직접 모셔오겠다는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정권의 결연한 변화와 쇄신의 의지가 있는지 국민은 무섭게 지켜보고 있다. 이번 인적 쇄신에 임기 후반부의 성패가 온전히 걸려 있다.

2024-11-21

[사설] 야당의 상법 개정안 우려, 한목소리 낸 대표 기업들

━ 이사 의무 확대 조항…소송 남발, 투기자본에만 이득 ━ 소액주주 보호는 필요, 배임죄 완화도 함께 논의해야 어제 삼성·SK·현대차·LG 등 주요 기업 16개사 사장단이 “지금 같은 어려움이 지속하면 국내 경제는 헤어나기 힘든 늪에 빠질 수 있다”며 “상법 개정 등 규제 입법보다 경제 살리기 법안에 힘써 달라”는 내용의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한 데 따른 것이다. 국내 대표 기업 사장단이 모여 성명을 낸 것은 그리스의 채무 불이행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이 확산하던 2015년 7월 이후 9년 만이다. 민주당의 상법 개정안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및 공평 대우의 의무가 추가됐다. 여기에 주식 1주당 의결권을 이사 선출 인원만큼 곱한 뒤 한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 의무화도 포함됐다. 소액주주를 위한다지만, 실제로는 이사들을 대상으로 한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만 부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국경제인협회는 민주당식 상법 개정을 하면 30대 상장기업 중 8곳의 이사회가 외국계 기관투자가 연합에 넘어갈 수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이미 칼 아이칸 등 몇몇 해외 자본이 경영권 장악 시도를 했다가 막대한 차액을 챙겨 떠난 사례도 있다. 쪼개기 상장이나 합병 비율 문제로 투자자 불만이 커졌다는 점에서 대주주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업 전반에 영향을 주는 상법보다는 주로 상장사를 대상으로 하는 자본시장법을 고쳐 규율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이 기회에 기업을 위축시키는 법 개정도 추진해야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기업의 배임죄 규정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정부도 기업 활동 지원을 위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사장단의 언급대로 한국 기업엔 이미 비상등이 켜졌다. 최근 포스코가 45년 넘게 가동한 포항제철소 1선재 공장을 폐쇄했다. 석유화학 업계도 어렵다. 롯데그룹은 계열사의 자금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어제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설명 자료까지 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으로 경제에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커졌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갈등이 심화하고, 수출품에 고율 관세가 붙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 부담을 가중하는 입법은 자칫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주주 가치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경쟁력 확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허한 말이 될 뿐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규제 개선에 나서고, 인공지능(AI) 같은 선도 분야 지원책도 마련해야 한다. 기업도 신사업 발굴과 일자리 창출, 혁신을 통한 성장성 개선, 주주 가치 제고와 소통 강화에 적극 나서길 바란다.

2024-11-21

[중앙시평] 국가 리더십의 실패, 계속 반복할 것인가?

1987년 민주화와 더불어 제9차 개헌을 통해 ‘87년 체제’라고 부르는 지금의 권력구조가 도입되었다. 87년 체제에서 이미 8명의 대통령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모두 재임 중 국가가 당면한 과제들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무능한 또는 잘못 뽑은 대통령이란 비난을 받았고, 대부분 퇴임 후 감옥에 갔거나, 스스로 목숨을 던졌거나, 탄핵당하였거나, 수사 대상에 올랐다. 예외라 할 수 있는 경우도 아들들이 감옥에 갔다. 우리는 이미 선진국이라 자부하지만 다른 선진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이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가? 대통령 실패 중요 요인 중 하나는 국민 기대와 현실 권력 간의 괴리 지속되는 국가 정체 타개 위해선 권력 구조와 국가조직 개편 필수 여러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우리 사회 저변에 깊이 깔린 갈등 요소들과 분쟁적 정치 풍토가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우리 국민이 국가 지도자로서 대통령에 기대하는 것과 대통령이 실제 행사할 수 있는 현실 권력과의 괴리가 있다. 우리 국민은 제왕적 대통령이라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제왕처럼 당면 과제들을 척척 힘있게 해결해 내지 못함을 비난한다. 87년 체제의 권력구조는 그 이전 대통령제와는 크게 다르다. 적어도 세 가지 요인 때문이다. 첫째는 5년 단임제다. 대개 첫 1년은 대통령직을 익히는 시기, 마지막 1년은 레임덕 시기라 일할 수 있는 기간은 고작 길어야 2~3년이다. 이 기간에 총선이나 지방선거가 끼게 되어 제대로 개혁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 이는 대통령 개인의 시계(視界)뿐 아니라 국가 전반의 시계를 단기화했다. 둘째는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다. 87년 체제 이전에는 제도상 여소야대 국회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87년 체제에서 여소야대 상황이 자주 벌어지면서 우리나라 권력구조는 대통령과 의회 권력이 충돌해 국정 정체가 이어지는 ‘이중적 민주주의 정통성(dual democratic legitimacy)’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앓게 되었다. 셋째는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금융 구조조정으로 대기업의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되고, 자본시장 개방, 시장 자유화로 정부가 과거처럼 대기업의 사활을 좌지우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금융실명제, 회계투명성 강화 등으로 정경유착의 토양이 마르게 되었다. 대통령은 더 이상 여당 총재로서 당 운영비와 선거자금을 지원하지 못하게 되고 공천에도 간여할 수 없게 되었다. 오랜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끈끈한 동지애로 형성된 양김(兩金) 시대의 가신 정치도 종식되고, 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통한 여야의원 압박·회유도 어려워지면서 대통령과 여당과의 관계는 과거와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처럼 정당이 가치와 이념보다 지역과 연고를 기반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해온 나라에서 여당은 대통령과 뜻이 다르거나 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탈당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우리가 오늘날 선진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지게 된 것은 과거 우리가 맹목적으로 도입한 서구식 헌법의 정치체제가 우리 상황에 잘 작동되는 최선의 지배구조여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과거의 대통령들이 자주 헌법의 취지와 달리 편법적·탈법적으로 국가운영을 해 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불가능하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보이지 않고 물밑으로 작동하던 과거의 제도가 사라지면 이를 새로이 명문화되고 보이는 제도로 보완해 주든가, 아니면 시민사회의 성숙과 사회적 자본의 축적으로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제도의 발전이 이를 보완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투명화하고 민주화된 정치권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원리다. 그러나 후자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국가의 도전과제들은 심대하고, 지도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국가지배구조로는 국가 정체와 퇴행을 벗어나기 어렵다. 개편해야 한다. 어떻게? 필자의 견해로는 우리 국민이 유럽이나 미국 국민과 다른 역사적 경험, 의식과 관행, 행동 양식을 가지고 있을진대, 이념적·이상적 추구보다 우리의 상황에서 잘 작동할 수 있는 실사구시적 개헌이 필요하다. 우리의 경우 사회적 신뢰에 기반한 민간의 협력과 자율조정기능이 여전히 취약하고, 시장의 윤리와 질서, 공정경쟁이 아직 깊이 정착하지 못했다. 국가의 기능은 서구의 시민사회, 시장경제에서 보다 더 중요하다. 한국의 권력구조는 역사적으로 중앙집중형이었다. 서양이나 일본처럼 분권적 봉건체제 경험은 없다. 조선시대는 TV의 사극에서만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유산은 우리의 의식 속에, 행동 양식에, 오늘의 정치·사회 관행에 여전히 깊이 배어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권력구조와 국가조직 개편을 더 미루어선 안 된다. 4년 혹은 5년 대통령 중임제로, 대통령 권한과 책임을 모두 강화하고, 여소야대 국회가 되었을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협치가 이뤄지는 제도를 제언하고 싶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러 다른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니 토론하고 모색해보자. 그러나 차기 대통령은 지금의 헌법으로 뽑게 되지 않길 바란다.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2024-11-21

무죄 부분이 더 걱정인 이재명 대표 [강주안의 시시각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형이 확정되면 차기 대통령 선거에 나갈 수 없다. 오는 25일엔 위증교사 사건 1심 선고가 기다린다. 예상외 중형에 민주당에선 “사법 정의가 무너진 날”(박찬대 원내대표)이라고 반발한다. 매번 거부당하면서도 “이 대표 재판을 생중계하라”고 우기는 국민의힘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단순한 사안으로 평가받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판결문이 A4 용지 130쪽 분량이다. 재판부의 고심이 읽힌다. 법원은 이 대표가 허위사실을 공표했는지 판단하기 위해 핵심 발언을 추렸다. 대장동 실무 책임자였던 고 김문기 성남 도시개발공사 처장이 2021년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직후 이 대표가 한 언론 인터뷰 발언이다. 진행자가 “(김 전 처장을) 모른다고 했던 걸 거짓이라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겠느냐”고 묻자 이 대표는 이렇게 답변했다. “4명 사진을 찍어가지고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제가 확인을 해보니까 전체 우리 일행, 단체사진 중의 일부를 떼내 가지고 이렇게 보여줬더군요. 조작한 거죠.” 법원은 이걸 거짓말로 봤다. 일반인에겐 “해외 출장 중에 김 전 처장과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의미로 들린다고 했다. 이 대표는 2015년 1월 12일께 호주 멜버른에 있는 골프장에서 김 전 처장 등 두 명과 골프를 쳤다. 이 대표 측은 인터뷰 발언에 대해 “단지 사진이 조작됐다는 의미”라며 “설사 이 발언을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말로 해석하더라도 해당 사진은 골프 친 날 촬영된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사진 찍힌 날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냐”는 취지다.억지스럽다. ━ ‘호주 골프’ 거짓말 유죄 판결 법원 재판부 역시 “골프 발언을 듣는 일반 선거인이 이 대표 주장처럼 ‘실제로는 다른 날 골프를 쳤고, 해당 사진이 촬영된 날에는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근거를 상술했다. “공식 일정에서 벗어나 이 대표와 골프를 친 사람은 김 전 처장과 다른 한 명뿐이므로 함께 국외 골프를 친 행위는 기억에 남을 만하다”고 했다. 사진 폭로 직후엔 생각이 안 났다 해도 김 전 처장 사망 전까지 두 달간 상황을 파악할 시간이 충분했다. 재판부는 검찰 주장도 일부 수용하지 않았다. “성남시장 재임 중엔 김 전 처장을 몰랐다”는 이 대표 발언은 거짓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대표 머릿속에 누가 기억돼 있는지는 자신만 안다. 그런데 판결문에 적힌 공소사실 요지를 보면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을 몰랐다는 게 더 놀랍다. 두 사람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 되기 전인 2009년부터 공동주택 관련 세미나 활동을 함께했다. 김 전 처장을 성남도시개발공사 팀장으로 영입하는 과정엔 이 대표 측근도 관여했다. 2015년 멜버른 라운딩은 출장 간 11명 중 이 대표 등 세 명만 다른 시청 직원 모르게 빠져나와 즐긴 거였다. 경기도 수원의 최저기온이 영하 7도이던 한겨울에 영상 20도의 따뜻한 남반구 골프장에서 함께 거닌 부하 직원을 잊었다는 얘기다. 출장 이후에도 김 전 처장은 이 대표에게 여러 차례 대면보고를 했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2018년 성남시장직을 마칠 때까지 ‘하위 직원’인 그를 몰랐다고 주장한다. 법원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며 이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다. 일반인 생각은 어떨까. ━ 10년 인연 간부 “몰랐다”는 무죄로 ━ 정말로 모른다면 지도자 자격 있나 인터넷 ‘노무현 사료관’엔 노 전 대통령의 글이 보관돼 있다. 2009년 3월엔 ‘정치, 하지 마라’는 글을 남겼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인의 길에는 많은 수렁이 나오는데 첫째가 ‘거짓말의 수렁’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지금 그 수렁에 한 발이 깊숙이 빠졌다. 수렁 밖에서 버티는 발은 더 위태롭다. 정말로 10년 관계를 맺어온 부하조차 기억 못 하는가. 재판은 계속 이어질 테지만, 이와 별개로 중차대한 개발 업무를 수행해온 핵심 간부조차 잊고 마는 자신이 나라를 이끌겠다고 나서는 게 스스로 불안하지 않은가. 강주안(jooan@joongang.co.kr)

2024-11-21

[이사빈의 수장고 안팎 훑기] 내리막길 예감한 천재의 어머니 배 속 낙원의 기억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나는 천재가 되고 세상은 나를 찬양할 것이다. 어쩌면 경멸과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천재, 그것도 위대한 천재가 될 것이다. 확신한다.” 살바도르 달리(1904~1989)가 열여섯 무렵에 일기장에 쓴 내용이다. 그는 실제로 이 선언에 걸맞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카탈루냐 출신으로 20대 중반에 파리와 뉴욕에서 전시를 하고, 서른둘의 나이에 타임 잡지 표지에 얼굴이 실렸다. 그러나 성공 이후에는 우스꽝스러운 기행을 일삼아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오늘날 달리라는 이름은 초현실주의와 동의어처럼 쓰이지만, 그는 이 그룹에서 10년 만에 퇴출당했다. 그리고 그 이후는 젊은 시절에 쌓아 올린 명성을 서서히 깎아 먹는 내리막의 인생이었다. 시대 급진성, 정신분석학 수용한 초현실주의파 대표해 벼락 성공 친파시즘 비판 속 그룹 퇴출 후엔 자기복제, 돈·명성 좇는 ‘광대’ 전락 출세와 세간의 기대, 작가 짓눌러 예술가와 작품의 동일시도 곤란 달리는 1904년에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태어났다. 잘생긴 얼굴에 언제나 외모를 열심히 치장한 그는 학창시절부터 눈에 띄는 멋쟁이로 남녀 모두의 애정 공세를 받았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이며 정통 미술교육을 받아 그림 실력이 탁월했다. 왕립 미술학교에 다니던 시절, 시험을 보는 자리에서 선생들이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겨 심사받기를 거부한 적도 있다. 그는 20대 초반까지는 인상주의와 입체주의 등 다양한 양식을 시도하다가 25세에 초현실주의 그룹에 가입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초현실주의는 1920년대 초 파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적 성격의 예술사조로 본능과 무의식, 꿈의 세계를 탐구했다. 달리는 뒤늦게 합류했지만 빠른 속도로 그룹의 대표 얼굴이 되었다. 그는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기괴한 광경을 완벽한 묘사력으로 그럴싸하게 그리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 결과, 그의 작품은 마치 기분 나쁜 꿈을 꾸고 난 후의 잔상처럼 왠지 찝찝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뛰어난 테크닉,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상상력, 자기애로 충만한 괴짜 기질이 새로운 시대의 급진성과 맞아떨어져 천재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건희 회장 유족이 기증한 1940년 작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삼성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기증한 달리의 회화 한 점이 있다. 제목은 ‘켄타우로스 가족’, 1940년 작이다. 1940년은 파리에 살던 달리가 나치 독일의 위협을 피해 미국으로 거처를 옮긴 해이다. 동시에, 그의 성공의 발판이 되어준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공개적으로 퇴출당한 직후였다. 한마디로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에 그려진 그림이다. 작품을 보자. 해안절벽과 바다를 배경으로 말의 몸통에 인간의 상반신을 한 켄타우로스 가족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의 두건을 쓴 켄타우로스는 아기를 돌보는 보모, 나머지 둘은 엄마와 아빠인 것 같다. 유모와 엄마 켄타우로스의 뻥 뚫린 배에서 아기들이 드나들고 있다. 이들은 과장된 자세로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달리가 1942년에 출간한 자서전 『살바도르 달리의 은밀한 삶』이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37세에 발표한 이 자서전은 당시에도 큰 화제를 모았다. 자기애와 허세가 넘치고 민망할 정도로 솔직한 일화가 가득하다. 달리의 서술에 따르면, 그의 기억은 어머니 배 속에서 시작한다. “추측건대 독자들은 세상에 나오기 전, 어머니 배 속에서 벌어지는 너무나도 중요한 인생의 시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 달리는 이 시기를 마치 지금 벌어지는 일처럼 기억한다.” 달리는 어머니 배 속이 “기막히게 쾌적한 낙원이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뒷받침해 줄 학문적 근거로 정신분석학자 오토 랑크(1884~1939)의 『탄생의 트라우마』를 언급한다. 랑크는 출생 자체가 강력한 정신적 외상이며, 유아기 때 엄마와의 분리가 성장기 아이의 정서적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잠재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했던 초현실주의는 당대 정신분석학과 관련이 깊었다. 달리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우상이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찾아간 적도 있고 자크 라캉과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출생의 트라우마와 분리불안에 대한 랑크의 이론에는 특히 감명을 받은 것 같다. 켄타우로스 배의 구멍은 육아낭 그렇다면 그림 속 켄타우로스의 배에서 아기가 나오는 것은 출산의 장면인가?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의 원제는 ‘육아낭이 있는 켄타우로스 가족’이다. 켄타우로스의 배에 뚫린 구멍은 캥거루와 같은 유대목 동물이 새끼를 넣어 다니는 육아낭을 달리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이 그림에 대하여, “새끼들이 어미 몸에 달린 주머니를 간헐적으로 들락거리는 피신처로 삼고 이런 식으로 외부 세계에 서서히 익숙해진다”고 표현했다. 육아낭은, 말하자면 출생으로 인한 분리의 충격을 완화해주는 장치이다. 이것을 주머니가 아니라 뻥 뚫린 원으로 그린 것은 절단된 신체 등의 기괴한 형상을 즐겨 그린 그의 초현실주의적 스타일이 반영된 것이다. 한편 그림의 배경은 달리의 고향 카탈루냐의 해안 풍경을 그린 것이다. 그는 “내게 경치는 이곳뿐”이라고 말할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으나 스페인 내전 때는 파리로, 2차대전 발발 후에는 미국으로 피신했다. 이런 달리를 겁쟁이라고 비난한 이들도 있었다. 실제로 그는 겁이 많았고 항상 불안해했다. 파리에서 처음으로 지하철을 탔을 때는 너무 무서워서 동행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동동거렸고, 머리 뒤에 빈 공간이 있으면 불안감을 느껴서 항상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러니 비록 미국으로 피신했지만, 전쟁에 대한 공포를 떨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 신화 속 동물인 켄타우로스는 달리가 이전까지는 한 번도 그린 적이 없는 소재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달리의 이전 작품들보다는 르네상스 시대 회화에 더 가깝다. 이 작품을 발표하면서 달리는 자신은 이제 초현실주의를 버리고 고전주의 풍으로 그리겠다고 선언했다. 이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은 사실 바로 전해에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퇴출당했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 그룹의 동료들은 달리가 돈 버는 데 혈안이 되었고 파시즘에 우호적이라며 비난했다. 그룹 내에서 가장 성공한 화가였던 달리는 자신이 곧 초현실주의이기 때문에 이제 초현실주의는 죽었다고 허세를 떨었지만, 마음 한 켠에는 상처가 났을 것이다. 그는 스물다섯에 그룹에 가입하면서 두 번째 삶을 얻었다고 느낄 정도로 초현실주의에 심취했고, 그 토양 위에서 자신의 예술을 싹틔웠다. 결과적으로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데는 불안과 상실감이라는 감정이 큰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시기에 그는 이미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잃은 것도 많았다. 고향과 동료, 안정과 소속감. 그는 전쟁에 대한 공포로 극대화된 내면의 불안을 대면하고, 그 근원적 원인을 랑크의 트라우마 이론에서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고향, 영원한 도피처로서 어머니의 품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는 성인이 된 후 아버지, 여동생과는 의절했지만, 열여섯 살에 여읜 어머니에 대해서는 항상 그리워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초현실주의 시절의 대표작은 아니지만, 그의 인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그림이다. 달리가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탈퇴한 이후, 그의 화가로서의 명성은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린다. 그는 돈이 되는 일은 마다치 않았고 언제나 대중의 관심을 갈구했다. 작품은 자기복제와 매너리즘의 늪에 빠졌다. 갑자기 국제무대에 등장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 천재 화가는 부와 명성을 얻으며 점차 셀럽이자 광대로 변해갔다. 달리의 삶과 예술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시대가 원하는 바와 일치할 때 예술가는 성공을 거두고 전성기를 맞는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성공은 대체로 예술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의 삶은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특히 역사적 혁신을 이뤄낸 예술은 그 자체로 예술가와 동일시되기에 더하다. 결국 예술가는 자신이 이뤄낸 성취, 그리고 세상의 기대에 휘둘리고 때로는 짓눌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가 괴물처럼 변해버리면 세상은 당황한다. 예술가와 작품을 떼어놓고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도 일어난다. 오웰 “달리 자서전은 악취 나는 책”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은 앞서 언급한 달리의 문제적 자서전을 읽고 서평을 하나 썼다. 자아도취에 빠진 화가가 상식을 벗어난 자신의 기행을 낱낱이 기록한 이 책은 그를 꽤 심란하게 한 것 같다. 책에서 악취가 나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오웰은 달리의 뛰어난 재능을 인정한다. 그리고 형편없는 인간과 그가 만들어낸 훌륭한 예술 사이의 괴리에 대해 고민한다. 쉬운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예술가에게 보통 사람 이상의 특권을 주어서도 안 되지만, 부적절한 언행을 이유로 그의 예술을 무시하거나 탄압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그의 기본 입장이다. 다만, 이런 괴리가 발생하게 된 원인을 개인의 심리, 그리고 시대적·사회적 상황 속에서 읽어내려고 노력한다. 오웰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한 인물과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쉬운 말들로 평가하기 전에, 그 관계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태도이다. 이사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2024-11-21

[최준호의 혁신창업의 길] “힘 조절 못하는 로봇은 위험, 사람 곁으로 올 수 없어”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73〉 에이딘로보틱스 최혁렬·이윤행 대표 로봇이 인간의 삶 속으로 빠르게 다가서고 있다. 사람 대신 커피를 타 주고, 요리를 들고 테이블 사이를 오가는 로봇은 이제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강아지 모양의 4족 보행 로봇이 공장 순찰을 돌기 시작하더니, 42.195㎞ 마라톤 코스를 완주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이젠 사람 모양의 로봇, 휴머노이드(humanoid) 차례다. 현대차가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인간형 로봇이 머잖아 자동차 공장에 투입될 태세다. 최근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인공지능(AI)과 결합하면 공상과학(SF) 영화 ‘바이센테니얼맨’(1999)의 가사도우미 로봇 앤드류가 현실로 등장할 판이다. 힘토크 센서 독보적 기술 보유 성균관대 로봇 연구실서 분사 제자가 나서고 스승이 참여해 창업 5년차에 200억 투자 유치 의외로 어려운 기술, ‘힘 조절’ 로봇이 사람의 곁으로 다가오기 위해선 필요한 우선 조건이 있다. ‘안전’이다. 근육질의 산업용 용접 로봇은 무인공장에 갇혀 작업하면 그만이지만, 사람과 함께 생활할 로봇은 어떤 형태든 사람과 물건을 다치게 하지 않아야 한다. 핵심은 ‘힘 조절’에 있다. 사람의 손을 잡을 때, 달걀을 들어 올릴 때, 망치질을 할 때 모두 힘이 달라야 한다. 지금껏 나온 첨단 로봇들은 움직임은 뛰어나지만, 아직 힘 조절엔 초보다. 이게 있어야 로봇은 인간과 제대로 어울릴 수 있다. 2019년 11월 설립된 스타트업 에이딘로보틱스는 로봇이 힘 조절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힘토크 센서’를 만드는 회사다. 로봇산업의 핵심 중간 생태계에 자리한 셈이다. 이제 만 네 살에 불과한 스타트업 중 스타트업이지만, 누적 투자 유치가 200억원에 이른다. 직원 36명에 올 한 해 매출 20억원이 예상된다. 투자금을 까먹으면서 미래만 기약하는 스타트업이 아니라는 얘기다. 투자기업 중에는 포스코기술투자와 GS벤처스 같은 대기업 벤처캐피털(CVC)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발굴을 통해 모기업 삼성전자의 미래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역할을 하는 삼성넥스트도 포함돼 있다. 삼성은 ‘휴보 아빠’ 오준호 KAIST 교수가 2011년 창업한 코스닥 상장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인수를 추진 중이다. 그런 점에서 삼성넥스트의 에이딘로보틱스 투자는 상징성이 크다. 에이딘로보틱스는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내 ‘로보틱스 이노베토리’ 연구실에서 파생된, 이른바 ‘실험실 창업 기업’이다. 연구실을 이끌고 있는 최혁렬(62) 교수와 그의 제자 이윤행(37) 박사가 각자대표를 맡고 있다. 중앙일보 취재진이 최근 경기도 안양에 자리 잡은 에이딘로보틱스를 찾았다. 산업 현장의 문제를 연구 주제로 Q : 어떻게, 왜 창업했나. A : “보통 교수가 창업을 주도하고, 제자들이 참여하는 형태이지만, 우린 거꾸로였다. 박사과정을 마무리한 이 대표가 어느 날 내 방으로 찾아와 회사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한 게 시작이었다. 우리 연구실에서 개발한 좋은 기술들을 산업 현장에서 적용하고 싶어했다. 알고 보니 이 대표 외에도 다른 제자들과 이미 뜻을 모은 뒤였다. 직접 나선 창업은 처음이지만, 예전에도 간간이 창업을 해볼까 생각해온 터라 크게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최 교수 연구실의 학풍은 사뭇 다르다. 석·박사 합쳐 100명이 넘는 제자를 배출했는데, 90%가 학계가 아닌 산업계로 갔다. 창업한 제자만 5명이다. 코스닥 상장 로봇 기업 케이엔알시스템의 창업자 류성무 박사가 최 교수의 1호 박사 제자다.) Q : 강의와 연구, 논문지도만으로도 바쁠 텐데. A : “뭐, 꾸역꾸역 하고 있다. 창업했다고 강의(연간 12학점 이상)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그래도 제자들이 회사의 실무를 주도하고 있어 큰 어려움은 없다. 오히려 스타트업이 학교 연구실의 연구 방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기술적 문제에 힌트를 얻어 연구 주제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논문으로 끝나는 연구가 아니라 산업에 직접적으로 응용될 수 있는 연구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큰 동기 부여가 되고 있다.” (이런 창업 형태는 국내외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구조다. 교수가 혼자서 스타트업 대표를 겸임할 경우, 업무도 바쁘고 여차하면 돌아갈 곳도 있어 회사에 전념할 수 없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고성능에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센서 Q : 에이딘로보틱스만의 기술력이 뭔가. A : “힘토크 센서 기술에서 독보적인 회사라 자부한다. (팔 모양의) 협동로봇이나 휴머노이드 로봇이 힘을 정밀하게 조절해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는 정전용량 기반의 ‘힘토크 센서’가 주력 기술이다. 기존 협동로봇 등에도 전류의 저항 기반 센서가 달려있는데, 정밀도가 현격히 떨어진다. 미국과 일본 등 로봇 선진국에 우리처럼 정전용량 기반 힘 센서가 있지만 비싸고 무겁다. 에이딘 로보틱스는 뛰어난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소형화한 센서를 제작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예를 들어, 미국 ATI의 센서는 대당 1000만원 이상이지만, 에이딘로보틱스의 센서는 약 150만원에 성능도 더 뛰어나다. 또 센서를 단순히 부품으로만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과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업 모델로 계속 확장하고 있다.” (레인보우로보틱스와 두산로보틱스 등 협동로봇을 만드는 국내 로봇 기업들이 에이딘로보틱스의 힘토크 센서를 장착하고 있다. 해외 시장 진출은 미국·중국 등 9개국에 이르지만 이제 시작 단계다. 테슬라 등 미국 주요 로봇 기업들로부터 문의는 오고 있지만, 아직은 수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10%에 그치고 있다.) Q : 투자 시장이 안 좋은데, 유치가 어렵지 않았나. A : “전체 투자시장은 어렵지만 의외로 투자하겠다는 곳이 많았다. 기술의 독창성과 상업적 가능성, 즉 연구 성과가 실질적으로 산업화할 수 있다는 점이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준 거라 생각한다. 삼성넥스트의 경우 미국에 본사가 있는데, 먼저 알아서 찾아와 원화가 아닌 달러로 투자했다.” Q : 창업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매출이 제법 있다. A : “멋진 청사진을 보여주면서 투자를 유치하고서는 이후 돈을 다 써버리고 힘들어하는 스타트업이 많다. 우린 애초부터 핵심 기술이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고, 그게 매출로 연결되는 프로세스가 있는 일을 하자고 결심했다. 특히, 다축 힘토크 센서는 가격 대비 높은 성능으로 국내외 다수의 기업과 연구소에 공급하고 있다. 이런 기술력이 초기에 매출을 빠르게 올리는 데 기여했다.” Q : 상장 계획은. A : “매출이 100억원은 넘고, 수익구조가 괜찮아질 즈음인 2027년쯤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매출 없이 기술력만으로 특례상장을 하고 싶진 않다. 상장 뒤에 수익을 못 올려 어려워하는 회사들을 많이 봐왔다. (코스닥 상장 기업은 연 매출 30억원 미만 등 사유가 발생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지만, 기술특례상장의 경우 매출은 상장한 해를 포함해 5년까지 관리종목 지정이 유예된다.” 김경환 성균관대 창업지원단장 “최혁렬 대표는 성균관대에서 연구와 연구결과의 사업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실천하는 교수다. 특히 본인의 연구결과를 사업화할 때 제자들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비즈니스의 타당성과 사업성을 검토하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다. 로봇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센서기술의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춘 회사다.” 최재웅 퓨처플레이 전무 “현재 산업계에서 사용 중인 힘토크 센서는 비싸고, 유지 비용이 많이 든다. 이 문제를 가장 잘 풀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곳이 에이딘이다. 로봇 수요 증가가 크게 기대되는 만큼 더 큰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최 교수 연구실은 세계 최고 수준의 힘토크 센서를 개발하는 곳이다. 성균관대를 직접 찾아가, 그 자리에서 투자를 결정했다.” ◆‘혁신창업의 길’에서 소개하는 스타트업은 ‘혁신창업 대한민국(SNK) 포럼’의 추천위원회를 통해 선정합니다. SNK포럼은 중앙일보ㆍ서울대ㆍKAIST를 중심으로, 혁신 딥테크(deep-tech) 창업 생태계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단체입니다. 대한민국이 ‘R&D 패러독스’를 극복하고, 퍼스트 무버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에 기반한 기술사업화(창업 또는 기술 이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최준호(joonho@joongang.co.kr)

2024-11-21

체중 20kg 빠진 美선교사, 고향 가란 말에 "조선보다 천국 가깝겠나" [백성호의 현문우답]

140년 전, 서구 사회에 조선은 낯선 나라였다. “호랑이가 종종 출몰하고, 말라리아가 성행하고, 사람을 잡아먹는 풍습이 있다”는 뜬소문이 퍼질 정도였다. 멀고도 험한 나라. 그런 조선을 향해 성큼 배를 탄 미국인들이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말이다. 당시 조선을 찾은 초기 선교사들이다. 1885년 4월 5일. 마침 부활절이었다. 미국 북장로교의 언더우드 선교사와 북감리교의 아펜젤러 부부. 샌프란시스코에서 출항한 이들은 일본을 거쳐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누가 최초로 조선 땅을 밟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던 이들은, 결국 서로 손을 잡고 함께 내렸다. 이들이 조선 땅에 첫 교회를 세웠다. 무엇이었을까. 미국에서 쟁쟁한 명문 신학대를 졸업한 이들은 왜 태평양을 건넜을까. 풍토병이 만연하고, 현대식 의료 시스템이 전혀 없는, 다시 말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나라를 이들은 왜 찾았을까. 한국 개신교 140년을 맞아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미국 동부를 찾았다. 초기 선교사들이 살던 동네와 출석하던 교회, 젊음을 보낸 신학교 등을 탐방했다. 한교총 전 대표회장인 새에덴교회 소강석 담임목사도 함께했다. #언더우드가 공부하던 신학교 미국 뉴저지에 있는 그로브 개혁교회를 찾았다. 영국에서 이민 온 언더우드 가족이 다녔던 네덜란드개혁교회다. 교회 지하에는 180년 전에 쓰던 작은 예배당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어린 언더우드가 예배를 보던 공간이다. 언더우드가 5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언더우드를 가리키며 “이 아이는 꼭 선교사를 시켜라”는 유언을 남겼다. 원래부터 신앙심이 강한 집안이었다. 그로브 개혁교회 뒤뜰에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가족묘가 있었다. 그에게는 한국이 더 큰 고향이었을까. 유족의 뜻에 따라 유해는 1999년 서울 양화진 선교사묘역으로 옮겨졌다. 그로브 개혁교회 묘지에는 비석만 남아 있었다. 어머니의 유언을 좇아 형제들은 일해서 모은 돈으로 언더우드를 대학에 보냈다. 뉴욕대학을 졸업한 언더우드는 뉴저지의 뉴브런즈윅 신학교에 들어갔다. 북미 최초의 신학교다. 149년 전에 설립된 도서관에는 신학생 시절 언더우드가 썼던 책상과 의자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도서관 한 쪽에 따로 언더우드 홀도 마련돼 있었다. 뉴브런즈윅 신학대 맥크리어리 총장은 “지금은 프린스턴 신학교가 더 유명하지만, 언더우드 당시에는 이 학교의 영향력이 더 컸다”며 “신학생 언더우드는 항상 젊고, 에너지가 넘쳤고, 교수들에게 종종 어려운 질문을 한 거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아펜젤러가 생각한 천국의 길 뉴저지의 드류신학교로 갔다. 아펜젤러가 다녔던 감리교 계열의 명문 신학교다. 역사고문서실로 갔다. 두꺼운 입학 명부가 있었다. 1882년 아펜젤러가 입학할 때 썼던 기록과 사인이 남아 있었다. 아펜젤러는 헌신적이었다. 조선 땅을 밟은 뒤 5년쯤 지났을 때 그의 몸무게는 80㎏에서 60㎏으로 줄어 있었다. 건강 상태가 안 좋았다. 1900년에 아펜젤러가 안식년을 얻자 드류신학교 동문이 말했다. “미국으로 돌아가서 함께 목회를 하자.” 그때 아펜젤러는 이렇게 답했다. “미국에서 천국 가는 게, 조선에서 천국 가는 것보다 더 가깝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펜실베이니아 수더튼의 아펜젤러 생가와 고향 교회를 찾아갔다. 교회 근처에 묘지가 있었다. 그곳에 아펜젤러의 빈 무덤도 있었다. 1902년 6월이었다. 목포에서 열리는 성서번역회의에 참가하고자 아펜젤러는 제물포에서 배를 탔다. 군산 앞바다에서 그만 다른 배와 충돌하고 말았다. 당시 같은 배에 탄 정신 여학교 여학생이 바다에 빠졌다. 이를 본 아펜젤러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결국 실종됐고, 유해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의 고향에도, 서울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도 아펜젤러의 무덤은 비어 있다. 어쩌면 아펜젤러의 이 한 마디가 그의 삶을 서술하고 있을까. “크게 되고자 하거든, 마땅히 남을 섬겨라.(欲爲大子 當爲人役)” 아펜젤러가 세운 조선 최초의 서양식 교육기관 배재학당의 교훈이기도 하다. #전킨 선교사 등 7인의 선발대 1861~65년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벌어졌다. 미국 땅은 남과 북으로 갈렸고, 교회 역시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 공업 사회인 북부와 달리 농업 사회인 남부는 노예제를 옹호했다. 남부의 교회들 역시 이런저런 성경적 근거를 들어가며 노예제를 지지했다. 언더우드는 북장로교, 아펜젤러는 북감리교다. 다들 북부 출신이다. 선교 지역은 한양과 수도권을 주로 맡았다. 왕실과 상류층을 선교 대상으로 삼았다. 이 때문인지 선교 방식이 이지적이고 엘리트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당시 조선 땅을 찾은 남장로교 소속 선교사들도 있었다. 이른바 ‘7인의 선발대’다. 전킨 부부ㆍ레이놀즈 부부ㆍ테이트 남매ㆍ리니 데이비스 등이다. 이들의 선교 방식과 정서는 북부와 달랐다. 사회 지도층이 아니라 민중 속으로 들어갔다. 선교 지역도 한양이 아닌 호남과 충청이었다.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며 교회를 짓고, 병원을 짓고, 학교를 세웠다. 소강석 목사는 “이들의 선교는 무척 헌신적이었다. 특히 전킨 선교사는 풍토병으로 어린 아들 셋을 조선 땅에서 잃었고, 자신도 결국 풍토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며 “전킨과 레이놀즈 등 7인의 선발대는 척박한 땅에서 호남 선교의 문을 처음 열어젖힌 이들이다. 그들의 무기는 박애와 열정이었다”고 말했다.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의 유니언 장로교신학교에는 남장로교 소속의 초기 선교사들이 당시에 썼던 성경책과 편지 등 선교 사료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백성호(vangogh@joongang.co.kr)

2024-11-21

[시론]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은 안전 지키는 선택

어느 80대 운전자가 한국도로교통공단이 발행하는 ‘도로교통안전 종합정보지’에 손편지로 독자 사연을 보내왔다. 그는 수십 년 전에 취득한 운전면허를 활용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그런데 손이 떨려서 10여 분만에 운전을 단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연이었다. 아들 부부가 “면허증이 아깝다고 무리해서 운전하면 사고가 날 확률이 높다”며 걱정하자 결국 이번 기회에 운전면허를 반납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는 내년에 초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에 처음 진입하는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전체 운전자 중 고령 운전자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고령 운전자 관련 교통사고도 지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지속 증가 신체·인지 능력 저하 고려해야 운전 능력의 객관적 파악은 필수 운전 능력이 저하된 고령자의 안전을 위한 대책 차원에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별로 운전면허 반납에 따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고령 운전자 입장에서 운전면허 반납을 결정하기는 말처럼 쉽지는 않다. 지난해 한국도로교통공단이 고령 운전자 41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8%(286명)는 ‘현재 운전면허 반납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이유는 ‘시간 단축 등 이동 편의 때문에’ ‘안전운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긴급 상황에 대비해서’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해서’ 등이었다. 안전운전이 가능하다고 응답한 고령 운전자 중에는 본인의 운전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워 과거의 경험에 의존해 판단한 사람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노화에 따른 신체적·인지적 기능 저하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를 분석해 보면 위험 상황을 초기에 인식하지 못해 발생한 경우가 많다. 교통상황에 대해 예민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는 의미다. 한국도로교통공단 연구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는 비고령 운전자보다 과속 같은 의도적인 법규 위반 행동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다. 하지만, 신호 대기 중인 차량 사이로 갑자기 보행자가 나타나는 경우 등 예측이 어려운 돌발 상황에서는 고령 운전자의 반응시간이 약 두 배 더 길었다. 고령 운전자는 익숙한 환경에서는 비고령 운전자와 대응 능력에 큰 차이가 없지만, 새로운 환경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는 교통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더 높게 나왔다. 고령 운전자가 운전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건강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적절한 식사와 운동, 두뇌활동 등 건강한 생활 습관이 신체 능력과 인지 능력 저하를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면허를 반납할 때가 됐는지 스스로 운전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이 경우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으면 더 분명하게 확인이 가능하다. 도로교통공단은 65세 이상 운전자를 위해 인지능력 판단 및 안전운전 수칙 상담을 제공하는 ‘고령 운전자 컨설팅’을 전국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실시하고 있다. 2007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고령 운전자가 신분 확인 수단으로 운전면허증을 사용해왔다. 일본 정부는 이런 관행을 고려해 운전면허 반납 이후 금융기관 등에서 본인 확인 서류로 인정받을 수 있는 ‘운전 경력 증명서’를 발급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쇼핑·숙박 등의 할인이나 운송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대중교통을 일정 기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 한국도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면 지자체별로 교통카드 또는 지역 화폐와 현금 등으로 일정 수준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교통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한 이동수단 확충 사업도 추진한다. 앞으로도 제도와 시설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고령 운전자가 운전면허를 반납한 이후에도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고령 운전자는 인지 및 신체 능력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진다면 운전면허 반납을 고려해봐야 한다. 운전면허 자진 반납을 장려하는 목소리가 자칫 운전할 권리를 빼앗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운전면허 자진 반납 제도는 고령 운전자가 운전능력을 점검한 뒤 스스로 안전을 선택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진표 한국도로교통공단 운전면허본부장

2024-11-21

[주정완의 시선] 구멍 뚫린 소아 의료체계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달 초 생후 2개월도 안 된 아기가 백일해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최용재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장의 탄식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이 아기는 백일해 1차 예방접종을 받기 전에 기침·가래 등의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백일해 양성이 확인됐다. 그 후 입원 치료를 받다가 나흘 뒤 증상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국내에서 백일해 사망자가 나온 건 2011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적어도 13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제2급 감염병인 백일해는 환자가 어릴수록 치명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번 걸리면 100일 가까이 기침 증상이 이어진다는 뜻에서 백일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백일해 영아 사망자 첫 발생에도 소아 감염 환자들 다인실에 입원 ‘1인실 병실 규제’ 누굴 위한 건가 문제는 다른 아기들도 안심할 수 없는 환경이란 점이다. 최근 국내 백일해 감염 환자는 ‘폭발’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늘고 있다. 질병청이 집계한 백일해 환자 수는 올해 들어 지난 9일까지 3만2620명에 달했다. 지난해 전체 환자 수(292명)에 비해 이미 110배 넘게 증가했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2019년(496명)과 비교해도 60배 넘게 늘어난 수치다. 하필이면 올해 백일해 환자가 급증한 원인이 뭘까. 의료계에선 코로나19가 유행했을 때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부작용이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것으로 본다. 충남 아산에서 어린이병원을 운영하는 이종호 원장은 “둑이 터졌다”고 표현했다. 이 원장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랬다. “코로나19 때 철저한 개인 방역으로 다른 감염병 환자도 크게 줄었다. 이게 꼭 좋은 걸까. 그렇지 않다. 사람이 면역을 얻으려면 예방접종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감염이 돼야 한다. 그런 식의 감염이 2년 동안 막혀 있었는데 예상했던 대로 마스크를 벗자마자 온갖 감염균과 바이러스가 터져 나왔다. 의학적으로는 ‘면역 부채’라고 한다. 내년에도 소아 감염 환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방역 당국도 호흡기 감염병의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다. 백일해뿐 아니라 마이코플라스마 폐렴도 요주의 대상이다. 지영미 질병청장은 지난 19일 관계부처 합동 대책반 회의를 열었다. 그러면서 “고위험군에 대한 집중적인 보호를 위해 백일해 등 호흡기 감염병 예방접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현재 한국 사회가 소아 감염병 환자를 적절히 돌볼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오히려 한 가지 감염병으로 병원을 찾은 어린이 환자가 입원 중에 다른 감염병을 추가로 얻을 위험을 지적한다. 이른바 ‘교차 감염’ 또는 ‘원내 감염’의 우려가 크다는 얘기다. 소아 입원 환자의 교차 감염을 막으려면 1인실 병실 확보가 시급하다는 게 현장의 요구다. 소아청소년병원협회는 전국 회원 병원 52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소아 감염병 환자의 다인실 입원에 대해선 ‘부적절하다’는 응답이 100%였다고 밝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1인실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차 감염 위험을 알면서도 다인실에 입원시킬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보건복지부의 병실 규제가 성인 중심 병원이나 어린이 병원이나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1인실을 늘리고 싶어도 못한다는 얘기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어린이병원을 하는 최 회장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4인실의 경우 소아 환자를 돌보는 엄마·아빠 등 보호자를 포함하면 열 명 정도가 한 병실에서 북적인다. 백일해 환자가 처음에 폐렴인 줄 알고 다인실에 입원했다가 다른 환자를 감염시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뜩이나 저출산이 심각한 상황에서 소아 의료체계를 충실하게 갖추는 건 우리 아이들의 건강과 생명이 걸린 문제다.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 간다. 이미 주요 대학병원에서 소아과 전공의 소멸과 소아 응급실 폐쇄 등으로 소아 의료체계는 붕괴 직전의 상태다. 첫아이가 아플 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가슴을 졸였던 부모가 둘째나 셋째를 낳을 마음이 들 것인가. 대전에서 어린이병원을 하는 강은식 원장의 지적이 뼈아프게 들린다. “현장에서 엄마들한테 비일비재하게 듣는 말이 있다. ‘나라에서 애를 낳으라고 하더니 막상 애를 낳으니까 더 힘들게 한다.’ 이런 엄마들에게 둘째나 셋째 계획이 있느냐고 물으면 고개를 젓는다. 초저출산 시대라면서 왜 이렇게 나라가 아이들 건강에 인색한지 모르겠다.” 정부가 매년 수십 조원의 예산을 저출산 대책에 쓴다는데 그 돈은 어디로 갔을까. 그 돈의 일부라도 소아 의료체계 회복에 제대로 써주길 바라는 건 과도한 바람일까. 주정완(joo.jungwan@jtbc.co.kr)

2024-11-21

[이윤정의 판앤펀] 여자들이 뭉치면, 성장한다

젊은 시절 ‘미녀 배우’의 대명사로 꼽히던 한가인이 유튜브 스타 랄랄(이명화)을 따라 아줌마 파마머리와 가는 눈썹을 그리고 60대 시골 여자로 변신했다. 그저 한번 웃기기 위해 만든 에피소드였겠지만 “평소 청순가련한 내 이미지가 답답했다”던 그가 낄낄대는 모습에 홀가분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팬들도 “한가인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라며 함께 즐거워했다. 여자들이 자신을 규정하는 틀을 깨고 나올 때 새로운 쾌감과 가능성의 문이 열린다. 여자들의 이야기, 여자들의 콘텐트는 확실히 전진하고 있다. 드라마 ‘정년이’ ‘정숙한 세일즈’(사진)와 예능 ‘무쇠소녀단’을 번갈아 보던 지난 몇 달 동안은 풍부함을 담아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흐뭇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신데렐라도 팜므 파탈도 없었다. 아찔한 미모나 ‘섹시함’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그러나 여자들이 뭉쳐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로웠다. ‘정년이’ ‘정숙한 세일즈’ 등 기존 틀 깨고 새 가능성 제시 여자들의 도전과 연대 주목 좋은 드라마는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새로운 캐릭터로 풀어낸다. ‘정년이’는 잊혔던 여성 예술 장르 국극을 단지 이야기의 소재에 머물게 하지 않고 심도 있게 재연해냈다. 여자들의 열정이 빚어내는 완성도 높은 국극 무대 장면들은 속이 뻥 뚫릴 만큼 새로운 감흥을 안겨주며 그 자체가 가장 돋보이는 주인공이 되었다. 여자들만 오롯이 모여 예술적 성취를 이뤄내는 드라마 속에서 여자들은 남자주인공의 사랑이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성장한다. 195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마이너 중에서도 마이너였을 여성 소리꾼과 여성 예술단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굽히지 않는 정년이는 씩씩하다. 여자들의 관계를 규정짓던 시기와 질투로 인한 깊은 갈등, 여성 캐릭터 하면 흔히 등장하는 순진무구한 희생자나 신경질적 마녀적 악녀 같은 전형성 대신 자신의 분야에서 높은 성취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열정이 더 두드러진다. 그 속에서 여성간의 애틋한 감정과 우정, 연대가 피어난다. 요정 집으로 팔려나간 국극단, 결혼이나 영화배우 등으로 소리꾼의 미래를 포기하는 맥없는 결말이 막판 시청자들을 화나게 했지만, 이전까지의 이야기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많은 성취를 이뤘다고 볼 수 있다. 같은 판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 ‘서편제’(1993)에서는 한을 품은 소리꾼을 만들겠다며 아버지가 딸의 눈을 멀게 하는 약을 먹이고, 그 딸은 원망하지 않았다. 30여년 전이긴 하지만 이런 가학적인 남자-수동적인 객체로서의 여자 설정을 떠올린다면 이것은 큰 변화다. 좋은 드라마는 픽션 바깥의 현실도 변화시킨다. 놀라운 실력으로 국극을 재연해낸 김태리나 정은채, 신예은 등 배우들은 새로운 이미지의 문을 열었다. 시청자들은 현실 속 국극 무대를 보고 싶어하고 그 시절의 스타들의 기억을 소환한다. ‘정숙한 세일즈’ 역시 여자들이 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금기시되던 때 무려 성인용품을 판매한다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뤘다. ‘19금’의 용품이 등장했다는 파격보다 돋보이는 것은 그것을 팔기 위해 소개되는 욕망의 자연스러운 표출이다. ‘환상’ ‘쾌감’ 같은 용어들이 주인공 여성들의 대사로 혹은 불꽃놀이 같은 것으로 유쾌하게 표현된다. “샷다(셔터)내리기 전에는 장사는 계속되는 것”이라며 성공을 향해 포기하지 않는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 김소연을 중심으로 주변의 편견과 폭력들에 여자들이 힘을 합해 맞선다. 그 과정에 각자가 품고 있는 사연이 서로에 의해 보듬어지고 단단한 연대가 형성된다. 그 결과 캐릭터들은 “가로막으면 뛰어넘으면 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무쇠소녀단’은 여성의 육체를 새롭게 활용하는 모습을 보게 한 기분 좋은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이 분야에서 새 경지를 개척한 ‘골때리는 그녀들’이나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같은 쇼들 이후 여자들의 몸을 다룬 프로그램이 어떤 게 등장할지 궁금하던 차였다. 진서연, 유이, 설인아, 박주현은 무려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했다. 아마추어 선수 출신에 평소 운동하는 이미지로 다져진 여자들도 누구는 수영을 못 하고, 누구는 자전거를 못 타는 약점 한가지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것들을 극복해내고 수영 사이클 달리기 모두를 완주해낸 여자들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수영장에 모인 여자들은 섹시한 수영복으로 몸을 노출하지 않고 검정색 반신 수영복을 입고 등장했다. 십여 년 전 데뷔할 무렵 ‘꿀벅지’라는 민망한 별명으로 불리던 유이가 이제는 쇼트 팬츠 아래 섹시한 허벅지가 아니라 멋지게 헤엄치는 건강한 팔과 다리,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며 걸음마부터 시작한 자전거로 엄청난 도전을 해내는 이미지로 기억될 듯해 통쾌함마저 느껴졌다. 철인 3종은 개인 종목이지만 이들은 입을 모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더 느껴진다’고 말했다.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여자들의 새로운 연대의식, 앞으로 더 대중문화 속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다.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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